Latest Posts

밤골

2017년 4월 18일
/
by sost
/ /

2016년 10월 20일 밤골에서

낡은 것들은 쓸쓸하다. 누군가는 매일 무릎을 짚어가며 구부정한 허리로 오르락내리락거릴 골목길과, 누군가는 매일 지친 놈을 뉘일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집을 구경꾼의 눈으로 쳐다봐도 낭만이란 말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 풍경이 있다. 그 쓸쓸하게 저물어가는 공간을 알록달록한 벽화로 가려봐도, 쇠락한 마을은 그대로다. 지난 여름 밤골을 거닐며 생각했다.

며칠 전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곳을 봤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가려, 바쁜 일상에 쫓겨 고개 한 번 돌리지 않다가 우연히 시선이 향했다. 모든 것들이 사라져 있었다. 저 슈퍼에선 누가 라면을 살까, 저 세탁소에선 누가 옷을 맡길까 궁금했던 공간들의 흔적은 없었다. 남은 것은 중장비가 파헤쳐 놓은 거대한 구멍과 구멍뿐이었다.

그 허름하고 쓸쓸한 골목 골목에는 사람이 살까 싶은 집들도 많았다. 낮에도 적막한 밤골슈퍼에는 먼지 쌓인 커피믹스와 라면봉지 몇 개가 놓여있었다. 주인장은 늘 그림자만 가득 찬 거리를 아는 듯 훔쳐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쓸쓸한 풍경을 홀로 봤다면 낮이어도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니 편견 같다. 낡고 오래되고 외로운 것들은 무섭고 불편하고 더러우며 함께 할 수 없다는 오랜 편견. “변화와 경쟁만을 강조하는 세상은, 한결같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경쟁에 뒤진 사람들의 삶은 황폐하게 한다”고 말한 나는 호기로웠고, 솔직하지 못했다는 뒤늦은 고백이라도 남겨본다.

밤골은 서울에 몇 안 남은 산동네라 겨울이면 유명인사나 대기업이 ‘사랑의 연탄나눔’ 행사를 심심찮게 열던 곳이었다. ‘상도동 밤골’이라고 기사를 검색하면 첫 머리에 올라오는 것은 어느 배우의 사진이다. 목에 흰 수건을 두르고 힘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손수레를 끄는 모습. 몇 달 전 우리 가족이 미세먼지 속에서 발 아래를 내려다봤던 공터에서 ‘사랑의 연탄나눔’ 행사를 기념하며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단체사진도 적지 않다.

그렇게 우리가 연례행사처럼, 선심쓰듯 ‘사랑’이란 단어로 연탄을 포장해 나를 때, 오랜 가난과 외로움에 무뎌진 이들은 어떤 눈빛이었을까. ‘사랑’이란 말로 ‘다름’을 확인하며 안도하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더는 된장찌개 냄새가 나지 않고, 들고양이 울음이 들리지 않는 채 벌거벗은 밤골을,  흙더미만 남은 그곳을 떠올리며 속절없이 끄적여본다. 가난만으로 쓸쓸하거나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을 하얀 밤꽃이 환하게 비추었을 날을 상상하며.

Share on FacebookTweet about this on Twitter
Read More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