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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합니까

2016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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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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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풍경을 보며 밥을 먹었다. 이름처럼 ‘고요’하진 않지만, 시야를 가득 채우는 나무들과 저마다의 색과 향을 뽐내는 꽃들을 보며 “야 좋다”라는 말을 연신 내뱉게 만드는 수목원에서.

오랜 투정 끝에 끼무룩 잠들었던 아이는 그늘이 깊은 기와집에서 일어나 깔깔대며 대청마루를 기어다녔다. 남편은 끝나지 않는 ‘인정 투쟁’을 이어가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분홍빛 큰꿩의비름, 동화 속 장면마냥 주렁주렁 꽃이 달린 나무수국, 비탈길 옆구리를 수놓은 깨꽃을 뒤로 한 채 구불구불 물길을 따라 난 도로를 달려 청평역으로 갔다. 경춘선을 타고 다시 서울로 입성한 시각은 오후3시께. 자신이 원하는 만큼 속도를 내며 달리는 잠수고가의 자동차들을 보며 1년 뒤, 이 시간에 나는 얼마나 정신없는 속도로 달리고 있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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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만이 전부는 아니다. 방향을 잊어선 안 된다.’

오랫동안 이 말을 곱씹으며 중심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요즘 같아선 1년 뒤, 나의 속도는 물론 방향마저도 걱정스럽다.

전날 페이스북으로 백남기씨 사망 소식을 접했다. 휴직을 기념하며 각종 앱을 지운 뒤, 최후의 보루로 남겨뒀던 날씨푸시알림마저 해제하며 마지막 남은 뉴스앱을 삭제한 것은 제법 오래된 일이다. 몇 달 전에는 페이스북 뉴스관련 페이지들의 팔로잉도 해제했다. 그럼에도 직업적 특성이 반영된 페친 맺기 덕에 그의 죽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순간 나는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으로 가득한 명동을 빠져나와 무슨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서울광장을 지나치는 버스 안에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남편과 그의 품에 잠든 아이도, 각자 이야기를 간직한 채 일요일 오후의 버스에 몸을 실은 사람들도 모두 평온했다.

한창 일할 때였다면, 나의 속도와 방향은 그들과 전혀 달랐을 것이다. 불섶을 짊어진 이마냥 다급하게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며 기사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온한’ 사람들을 보며 나는 내가 짊어진 불섶이 내 머리털만 태우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결국 그 불씨는 남아 모두를 잿더미로 만들 거야’라는 예언을 수없이 한다 해도, 누구도 당장의 불섶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스러져가고, 우리가 시스템이라 믿었던 것들은 무너지는데, 그 ‘꾸준함’은 몸서리쳐질정도로 무서운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일조차 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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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글을 써야하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공포가 커져간다. 무엇을 써서 무엇을 움직이고 무엇을 지킬 수 있는가를 생각할수록 두려움은 불어난다. 언젠가 아이가 그 글들을 읽는 날,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어떻게든 희망을 놓치지않으려 버둥대면서도 입에선 절망이란 단어가 너무나 쉽게 나오는 시절이다. 나만의 평온을 유지한다면, 낯선 풍경을 보며 밥을 먹는 일 같은 일상의 이벤트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아니오’란 답을 쥔 채 계속 걷고 있지만, 좀처럼 길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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