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뚫고 나와야한다

ⓒ Andrew Neel

태도를 고민해보기 시작한 게 언제였을까. 당장 떠오르는 기억은 6~7년 전 일이다. 그때도 나는 서초동이었고, 검찰총장 관련 기사를 출고하기 전, 대검 쪽 멘트를 따야하는 상황이었다. 검찰 관계자에게 질문했고, 답변은 부실했다.

그런데 추가 문자가 왔다.

“기사화하신다는 전제로 질문하신 것인지요.”

이미 ‘저쪽 반응은 끝’이라 생각했던 터라 “네”라고 짧게 답한 뒤 보고했다. 그때 팀장은 “‘한국사진기자협회에서 방금 공식성명서가 나왔습니다. 기사화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대검 입장 충분히 반영하겠습니다. 입장 말씀 안 하시면 없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정중히 답변해”라고 지시했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소위 ‘쿠세’라고 불리는, ‘악습’ 중 하나가 ‘쓸데없는 까칠함’이라고 생각해왔으면서 정작 내가 그러고 있었다.

배우 송강호가 72회를 맞은 로카르노영화제에서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로카르노영화제

다시 한 번 ‘태도’라는 단어를 강렬하게 떠올렸던 일은 지난해 5월말이었다. 우연히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첫 만남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 1997년 두 사람은 조감독과 무명의 배우였다. 단역 오디션 탈락 후, 송강호는 장문의 삐삐 녹음을 받는다. 봉준호였다. 그는 송강호의 연기를 정말 인상 깊게 봤고, 어떠한 이유로 함께 작업하지 못하게 됐는지 설명한 다음 “언젠가 꼭 좋은 기회에 다시 뵙고 싶다”는 말로 끝맺었다.

이 이야기를 접한 뒤 나는 ‘삶의 태도라는 걸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타인에게 예의는 잃지 않으며 살자’고 메모했다. 돌이켜보면, 몇 년 전의 기억도 무의식 중에 작동해서 봉준호의 겸손함을 곱씹어봤던 것 같다. 말로야 골백번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몰라, 착하게 살아야 돼’ 하지만 정작 실천의 영역에서 나는 한 없이 부족했다. 지금도 큰 차이는 없지만, 예전보다는 아주 조금은 고민하는 스스로를 자각할 때 살짝 ‘우쭈쭈’하게 된다.

며칠 전, 나는 또 ‘태도’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이번에는 결이 정반대였다. 그날 만난 H에게 나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힘들었던 때가 언제세요? 방황의 시기? 항상 당당하신 게 있어서…”

예상했지만, 사실 예상보다 더 빠르고 단순하게 그는 ‘없다’는 투로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뭐 맘대로 하고 살았죠. 근데 그게… 지나고 보면, 거치고 나면 그게 힘들다는 생각 잘 안 들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걸 뚫고 나온 거잖아요.”

‘역시 당당하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기했다. 저 당당함은 어디서 올까. 불쾌한, 그러니까 ‘오만함’은 아니었다. 동시에 ‘겸손한 당당함’에 해당하지도 않았다. 단어 그대로의 당당함이랄까. 앞으로 이 사람의 행보가 궁금해질 만큼, 날것 그대로의.

ⓒ Agnieszka Boeske

지난 몇 달 동안 혼란에 또 혼란, 좌절에 또 좌절을 겪었다. 어찌 생각하면 그냥 일일 뿐인데, 하지만 일인데, 모든 뿌리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요즘에서야 바닥에 겨우 붙어있다가 조금씩 웅크렸던 몸을 펴고 있다.

다시 중심이란 것을 고민하게 된다. 한때 나는 원칙주의자라 여겼다(물론 남편은 지금도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이어지고 있는 고민은, 내가 정말 원칙을 감당할 수 있느냐였다. 나름의 기준을 세워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다른 생각들이 많았고, 그 생각들은 궁극적으로는 첨예하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수많은 칼과 칼들이 서로를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아슬아슬하게 칼 끝에 선 채 겨우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위기는 진행 중이다. 아마 끝나진 않으리라. 그래도 어렴풋이 중심 잡는 법에 익숙해지고 있다. 태도라는 것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어떻게 지켜가야 할지 고민한다. 겸손함과 당당함, 양자택일할 정서는 아니다. 둘 다 견지한다면 최고다. 내가 과연???

나는 그냥 나다. 작고 평범하다. 다만 크기, 독창성을 떠나 내가 나이려면 결국 삶의 태도를 지켜가야 한다. 방법은 결국 겸손하든 당당하든 성찰하는 것이다. 겸손함은 사실 기본이라 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당당함도 성찰 없인 유지하기 어렵다. “그걸 뚫고 나온 것”이라던 H의 말 너머를, 달의 뒷면을 기억하자. 결국 우리는 스스로 뚫고 나와야 한다.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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