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을 타고 올라갑니다

5시 15분. 긴장한 눈꺼풀이 절로 들린다. 시간을 확인한다. 안도한다. 다시 눈꺼풀이 감긴다. 6시 00분. 아직 익숙지 않은 모닝콜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아이가 깰라 서둘러 알람을 끈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적당히 분칠을 마친 뒤 집을 나선다. 6시 53분 서울행 무궁화호를 타면 회사에 8시 30분쯤 도착한다. 현재로선 이게 최선이다.

지난 가을 남편은 평택 친정으로 이사를 가자 했다. 집주인에게 통보부터 새 집 물색과 가계약까지 물흐르듯 이뤄졌고 우리는 새해를 나의 고향에서 맞기로 정리됐다. 이사를 정한 큰 이유는 아이들이었다. 내 새끼 내가 알아서 키워야하지만, 연년생 자매를 남편과 내가 오롯이 돌보기엔 상황이 여의치않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제주도 시댁에 맡길 수도 없고. ‘친정찬스’ 빼곤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삶의 질도 따져봐야 했다. 환경파괴자 남편이 틈만 나면 가재도구를 내다버리는 통에 우리 물건은 신혼 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 없었지만 식구가 늘고, 거기에 딸린 짐들도 불어났다. 더 큰 공간이 목말랐다. 그러나 서울에서 집 1평 늘리기란 목마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집안의 재력, 은행의 협력이 필요하다. 운좋게 두 가지를 갖췄다해도 워낙 부동산가격이 높은지라 예산에 맞춰 집을 보러다니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하게 된다. 반면 평택은 절대적으로 집값이 쌌다.

하지만 우리는 서울이란 도시에 가늘고 길게 매달려있다. 그 실가락은 거미줄처럼 얇고 희미해서 끊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한다. 십여년만에 돌아온 고향, 산업단지 아니면 끝없는 평야만 펼쳐진 경기 남부 도시에서 30대 젊은 남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닥치면 한다지만, 삶의 기반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서울의 모든 것을 등져버릴 용기는 나 같은 평범한 이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숨을 헉헉거리며 매일 뛰고 또 뛰어 서울로 기어들어올 뿐이다.

우당탕탕 뛰어다니다 고개를 돌려보면 비슷한 얼굴들이 곳곳에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 붉게 충혈된 눈, 무겁게 쳐진 어깨의 장거리통근족들. 비슷한 이유로 서울에서 밀려났을 우리들은, 비슷한 이유로 서울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쏠린 대도시에서 벗어나 삶을 유지하는 다른 길을 쉬이 찾지 못한 자들. 삶의 질을 좇아 서울 밖으로 나갔지만 그것을 유지하려면 서울 안으로 기어들어올 수밖에 없는 좀비.

쇠락한 지역들은 젊은이들을 품지 못하고, 대도시의 팍팍함에 숨막혀하면서도 갈 곳 없는 이들은 이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 끙끙대며 힘을 써본다. 그리고 끊임없이 계산해본다. ‘나는 서울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가야 할까?’ 그러다 황급히 열차 시각을 확인한다. 얼른 뛰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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