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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2 대인배의 마음

2017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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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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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때에 일을 끝마쳤고, 적당한 때에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적당한 시간을 아이와 깔깔거리며 보낸 뒤 적당한 시각에 아이는 잠자리에 들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화요일 저녁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부터 아이가 아팠다. 평소 쓰던 해열제를 먹여봐도 체온계는 자꾸 38도를 넘겼다. 황급히 친정 엄마에게 연락했고, 그 다음날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남편이 종일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이날따라 선약이 있었다. 아픈 딸을 놔두고 저녁자리에 가자니 마음이 편치않았다. 남편은 괜찮다며 다녀오라고 했다. 그리고 수시로 아이의 상태를 알려줬다. 열은 도통 떨어지지 않았다. 밤 10시즈음에는 오히려 39도대까지 치솟아 있었다. 시끌벅적한 이자카야에서 전전긍긍하던 나는 남편에게 ‘병원에 가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는 생애 첫 응급실을 경험했다. 독감검사, 소변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금요일 아침, 잔뜩 피곤한 얼굴의 남편이 화를 냈다. 참을 수가 없어 나도 소리를 질렀고, 여느 집처럼 우리는 싸웠다. 냉전은 오늘까지 이어졌다.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늘 그렇듯 내가 끝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육신과 정신의 건강을 위해 나는 마음을 먹었다.

‘화해합시다.’

‘그럽시다.’

3일간의 불화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문자를 보내며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대인배라서 화해한다! 그렇지?” 아이는 그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밥통만 뒤적였다.

쇠를 두드리면 단단해지듯, 사람도 부딪치면 전투력이 올라간다. 그와 나의 10년을 돌아보면 그랬다. 물론 레벨업한 것은 내쪽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싸움은 대개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끝이 났다. 이유는 늘 똑같았다. 내가 ‘대인배’니까.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나는 사과를 받고 싶었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 시시비비를 가렸을 때 내가 옳다, 이런 얘기가 아니다.

그날 아침, 점점 서로의 목소리가 높아가던 중 남편은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일찍 일찍 좀 다니던가!”

이 한 마디가 몹시 서운했고, 서러웠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무슨 의도로 저 말을 던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이 한 마디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애한테 무책임하면서 유난만 떠는 엄마’라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고, 그래서 더 화가 나고 슬펐다. 늘 나를, 나의 일을 응원해주던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이라기에는 너무나 큰 돌덩이었다.

지난 2일부터 다시 출근을 하고 있다. 첫 일주일은 출퇴근길이 울적했다. 괜시리 눈물이 나서 훌쩍이며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일하는 엄마’라는 상황을 단 한 번도 가정하지 않았지만 막상 현실이 되자 예상보다 무게는 컸고, 감정도 어지러웠다. 매일매일 내가 새로 찍은 딸 사진으로 가득했던 휴대폰 사진함이 남편이 찍은 사진들로 채워져가는 것을 보면 씁쓸했다. 종일 아이 생각에 젖어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따금 캄캄한 저녁까지 어린이집에서 엄마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딸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렸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은 건, 언젠가 아이도 일하는 엄마가 되는 날에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일하는 나를 존중해주는 남편의 응원도 컸다. 내가 온전히 나일 때는 일하는 순간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서 생각지 못한 말을 들어서였을까? 억울하고 섭섭한 마음만큼 분노가 컸다.

그럼에도 내가 또 다시 화해를 먼저 얘기한 까닭은 결국 누군가는 이 상황을 풀어야할 테고, 내가 움직이는 쪽이 좀더 쉽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알고 있다. 남편에게도 달라진 상황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이가 아프다면 더욱 어렵다는 것을. 어쩌면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넘겼을 일에 날을 세운 것도 우리의 상황이 너무 변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번 일이 시작일 수도 있다. 다음번엔 더 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결국 화해하고 칼로 물베기하며 살아야하는 것을. 다시 말하자면, 내가 대인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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