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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안녕

2017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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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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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터뷰를 할 때 흔히 마무리로 던졌던 질문이다. 그런데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 질문이었는지 당한 뒤에야(!) 알았다.

오늘 이석기 전 의원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과 인터뷰했다. 내 기사를 보고 한 번 만나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고민됐다. 인터뷰 자체가 부담스럽다기 보다는 가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싶었다. 사건이 벌써 4년 전 일이 됐고, 당시에 그 상황 자체를 따라가기 급급해 특별히 기억나는 일화나 감흥이 없었다. 너무 실감 안 나는 사건이라 더 제3자처럼 거리를 두고 봤던 것 같기도 하고. 1시간 20분 정도 떠들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점점 질문이 추상적이고 큰 가치들을 묻는 쪽으로 변해가서 헉헉대고 있을 때 감독이 내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없어요’라고 웃으며 끝낼까? 1초 간 고민했다. 그래도 뭔가 쥐어 짜내야하지 않을까? 다시 1초 간 고민했다.

“낡은 생각을 가진 집단과 또 다른 낡은 생각을 가진 집단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던 사건 같다. 그로인해 사회도 과거의 시간 속에 살게 됐다. 이제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게 이석기 전 의원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간단하다. ‘이상한 사람들을 이상하게 대하다 결국 이상해진 사건.’ 그런데 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만큼 이 대척점에 서있던 세력 또한 내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다. 냉전체제의 이념대결이란 낡은 사고가 아직도 살아서 꿈틀대고, 우리를 집어삼킨다니. 지금은 2010년대인데도.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정말이지 어마무시하면서도 황당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바란다. 우리가 더는 과거의 시간에 갇혀 있지 않기를. 오늘 당면한 아픔들조차 너무 많은 세상이다. 지난해 촛불은 광장을 열었고, 정의롭지 않은 권력을 끌어내렸다. 철옹성 같던 보수의 벽에 금이 가고, 그 균열로 ‘종북몰이 우파’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 일이 모두의 배를 불리고, 등을 따숩게 만들지 않는다. 촛불혁명이 이뤄졌기에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차고 넘친다.

가끔 안수찬 기자의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에 나오는 아기 아빠를 생각한다. 이른 아침, 맥도널드 매장에서 콧물을 흘리는 두 아이에게 으깬 감자를 먹이던 그 아빠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침 9시에 나와 밤 11시에 퇴근해 지하 단칸방에 겨우 몸을 뉘일 수 있다던 그 아빠는, 그의 젊은 아내와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퇴행은 시대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렸다는 점이다. 하여 우리는 콧물을 흘리는 두 아이에게 으깬 감자를 먹이는 아빠의 삶을, 종잇장처럼 구부러진 허리로 헤진 박스와 신문지가 위태롭게 쌓인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의 삶을, 살을 에는 바람에도 위태롭게 하늘 위에 선 노동자의 삶을, 존재하는데도 지워져버린 소수자의 삶을 말하기조차 힘들었다.

이제는 거대담론에 가려진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들, 진짜들을 말해야 할 때다. 과거에 머무르지 말고, 뭉뚱그리지 말고. 나는 감독에게 그런 의미에서 더 이상 이 사건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념대결에 빼앗겼던 시간을 되찾아서 현재를, 미래를 얘기하길 바란다고 했다.

내 생각을 잘 전달했는지는 모르겠다. 인터뷰할 때 취재원이 대답 못한다고 속으로 답답해했던 나를 반성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말도 잘 못했는데, 이 글도 버벅대며 쓰네. 큰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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