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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

2017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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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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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쓰고 외출해 마시는 커피. 애가 품에서 자고 있긴 했지만…

요즘 나는 오후 다섯 시를 기다린다. 젖먹이 둘째가  마지막 낮잠에서 깨어나기 직전, 그리고 첫째가 곧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시간. 한없이 고되고 행복한 하루가 곧 끝나감을 실감하는 때다. 그래서 가장 차분하고, 잠시나마 조용히 혼자인 시간.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를 읽고난 뒤, 줌파 라히리의 글이 내 ‘오후 다섯 시’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그가 읖조리는 고독, 혼자됨의 날들. 인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뱅골어를 모어로, 영어를 일상어로 쓰며 살아온 작가는 어느 날 이탈리아어로 말하고 글쓰기를 결심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이탈리아어 글쓰기의 결과물이다.

뱅골어도, 영어도 아닌 이탈리아어라니. 처음에는 여행이 준 그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탈리아어의 숲을 거닐며 단어들을 바구니에 주워 담을수록 그는 이탈리아어를 배운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삶의 나머지를 등 뒤에 남겨둔 채” 이탈리아어와 거리를 좁혀가며 그가 직면한 것은 “불완전할 자유”요, “참호 안에서 글을” 쓰지 않는 변화였다. 그 변화는 삶의 뼈대에 새살이 돋아나게 하는 일이었고, 자기만의 침묵과 고독에 파묻혀 삶을 정리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 언젠가 이탈리아어와 자신의 사이에 여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는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지 않겠다고 하며.

인간이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우리는 외로워야 살아갈 수 있다. 관계가 주는 안정감은 삶에 온기를 더해주지만, 온전히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약간은 공허하고 초췌한 것 같은 시간이 더해질 때 삶이라는 것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가를 헤아릴 수 있다. 겨울의 창백한 공기가 봄의 생동하는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게 만들어주듯, 혼자라는 것을 느껴야  나와 보이지 않는 다리로 이어진 다른 섬들의 존재를 깨닫기도 한다. 결핍이 채워주는 충만함이랄까. 줌파 라히리 스스로 ” 부서지게 쉬운 피난처에서 노숙자나 다름없이 살기 위해 훌륭한 저택을 포기”한다고 비유한 이탈리아어 글쓰기를  시도한 까닭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본다. 오늘도 오후 다섯 시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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