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사고

청소기를 돌린 뒤 아이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20여분 뒤면 큰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남은 집안일의 우선순위를 정리하자며 머리를 열심히 굴리던 중 휴대폰 화면에 ‘엄마’가 떴다.

“저녁 준비를 할 수가 없다.”

깊은 한숨이 밀려왔다. 아직 빨래와 설거지가 남았는데, 시간주머니는 점점 비어가는데 할 일이 더해졌다. 잠투정이 심한 둘째는 오늘도 ‘자비란 없다’고 온몸으로 말했다. 헐레벌떡 친정으로 갔다. 살짝 숨소리에 가래가 그렁그렁 섞인 아이가 회색타이즈를 신고 할머니와 노는 중이다.

“애들 감기기운 있는데 바지는 입혀야지(오늘 아이는 원피스 속에 흰 반바지를 받쳐입었다, 한낮의 해가 너무 뜨거워서 벗겼다)” 한숨으로 꾹꾹 눌렀던 감정들에 가시가 돋는다. 날카롭게 세워진다. “애들 아빠가 입혔다고!!” 그렇게 또 한 번 설전을 벌인 뒤 엄마와 나는 아슬아슬한 외나무타기를 이어갔다. 이미 온몸은 한숨으로 채워져있었다.

졸린 두 눈을 손으로 비볐다가 두 눈을 꿈벅꿈벅하길 반복하는 아이를 서둘러 안고 집으로 가자는 생각뿐이 없었다. 평소처럼 아파트 현관 가까운 쪽에 차 댈 곳을 찾았고, 생각한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다. 갑자기 엄마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앞에! 앞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우리 차 왼쪽 앞 범퍼는 다른 차 오른쪽 옆구리를 깊숙이 찌르고 있었다. 한숨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나는 당황스러움, 그로 인한 멍때림 등으로 채워져버렸다. 아니 살짝만 찔러도 허물어질 수 있는 모래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겨우 차를 돌려 다른 곳에 대고 피해차량을 살핀 다음 사진을 찍었다. 차주 연락처가 없어 메모용지를 찾았다. 아무리 주변을 뒤져봐도 종이라곤 커피컵 슬리브뿐. 잠시 숨을 골라 명함을 생각해냈다. 나는 옛 명함에 간단히 메모했다. 급히 휘갈겨쓰느라 단어들의 높낮이는 제각각이었다. 불행이란 녀석, 늘 인생은 절대 방심할 수 없다고 알려준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