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3 술

언젠가의 무알콜 맥주. 이제 곧 마실 일 없겠지.

질겅질겅 진미채를 씹어먹는 아빠 옆에 앉은 내가 바닥을 거의 드러낸 유리잔을 들이켠다. 혀끝을 겨우 적실 정도의, 정말 약간의 맥주가 남아있는. 내 음주의 첫 기억이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것 같다. 목적은 단순했다. 짭조름한 오징어채를 연신 먹다보면 목이 말랐고, 손 닿는 곳에 마실거리가 있었다. 알코올인지 알았다면 조숙했다고 해야 할까, 영악했다고 해야할까.

본격적인 첫 음주는 중3 때였다. 아직 장례식장이 흔치않은 시절이었다. 2박 3일 동안 하얀 소복을 입고 외갓집 마당과 대문밖에 쳐진 천막을 오가며 일을 했다.

외할머니의 꽃상여가 떠나간 날, 어른들은 내게 고생했다며 맥주를 건넸다. 가득 채워진 종이컵을 겁도 없이 들이켰다. 다음날 학교에 가야했는데 엉덩이를 떼기 싫었다. 주섬주섬 전화기를 챙긴 나는 불콰해진 얼굴로 담임에게 하루 더 결석해야 한다고 알렸다.

CH2OH는 2003년 겨울에서야 다시 내 혈관을 적셨다. 그뒤로는 계속 온몸 안에서 흘렀다. 알콜이 혈관과 혈관 사이를 오가는 동안 나는 웃고 울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날들 때문에 불안해하기도 했고, 이국의 정취가 주는 달콤함에 같이 취해버리기도, 어색한 공기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통신사 할인 받겠다고 친구와 헐레벌떡 달려가 마셨던 준벅. 허름한 꼬치집에서 삼치구이를 간장에 찍어먹으며 들이킨 소주. 등산의 고단함을 안주삼아 잔을 채운 막걸리. ‘이 맛에 먹는구나’ 감탄하며 홀짝댔던 조니워커 블루 등 그날들을 채워준 술들도 다양했다.

어쩌다보니 근 3년째 비자발적 금주 중이다. 한동안은 딸깍 하는 맥주캔을 따는 소리가, 혀끝에 맴도는 소주의 쓴맛이, 술지게미가 고루 섞여 뿌연 막걸리빛깔이 많이 그리웠다. 지금도 그립다.

마셔라 마셔라 쭉쭉쭉 쭉쭉쭉

하지만 이 그리움의 나날은 곧 끝난다. 오늘은 둘째가 처음 어린이집에 간 날이다. 아이의 사회생활이 시작됐다는 것은 곧 나의 사회생활 또한 다시 시작되리란 뜻이다. 곧 다시 음주를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솔직히 얼른 시작하고 싶었다. 나의 쓸모, 나의 지적세계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여기 아닌 저기로 돌아가고 싶었다. 오늘 아이를 등원시킨 뒤 ‘그날’이 머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마음을 굳혔다.

그럼에도 알고 있다. 볕이 좋은 날, 아이들 옷을 널다 희미한 젖냄새를 그리워하리란 것을. 때론 내 가슴에 파고들며 환하게 웃던 얼굴이 보고싶으리란 것을. 젖몸살로 고생하고, 수유텀 때문에 자유를 잃고, 커피 한 잔만 겨우 허락되던 날들에 그렇게 진저리를 쳤으면서도 가끔은 기억의 서랍에서 그날들의 냄새를, 표정을 꺼내보리란 것을. 인간이 이렇게 어리석다. 과거는 자꾸 아름답게 적힌다.

사실 그 장면들이 아름다운 게 맞긴 하다. 어리석은 우리는 뒤늦게 깨달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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