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새우로서 살아간다”

어디로 흘러가 무엇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사람을 좀먹는다.

이 감정은 너무 일상의 것이다. 평정심을 유지하긴 어렵다. 불안감에 억눌리긴 쉽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는 매일매일 떠다닌다. 발 붙일 곳을 찾았나 싶다가도 ‘여기가 아니네’하고 돌아선다.

김보통의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는 이 불안의 정서가 지배하는 책이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나는 숨이 막혔다. 이토록 막연하고, 이토록 불안한 당신. 당신은 곧 나다. 나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공의 공식, 인생의 목표는 상당수가 공허하다. 아버지의 평생 소원인 ‘대기업 입사’를 쟁취했지만 입사 4년 만에 김보통은 길을 잃었다. 나는 대학 첫 학기에 길을 잃었다. 지금보다 10kg가량 덜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면 모두들 놀라는데, 그랬다. 자꾸 줄어가는 체중계 숫자에 하루는 덜컥 겁이 났다. 자꾸자꾸 나는 작아지다 사라져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그땐 그랬다.

성취인 줄 알았던 열매가 진짜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사람은 하염없이 쪼그라든다. 숨이 막히기도 하다. 그래서 김보통은 사표를 냈다. “목을 죄어오던 답답함”은 사라진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이 “우주적 고독에 던져졌음”을 깨닫는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우주란, 고독이란 도망칠 곳투성이여서 끝내 도망칠 수 없는 공간이었으니까.

몇 달 뒤 그는 깨닫는다. 팬티 바람으로 부엌에 서서 식빵에 피어난 곰팡이를 뜯어내고 있는 자신을. 존엄은 점점 스스로 내려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련없이 그는 식빵을 버리고 중국집에 전화한다. 탕수육 소자에 짜장면 하나를 주문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일상은 드라마가 아니다. 곰팡이 핀 식빵에서 탕수육으로 건너뛰는 것은 일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브라우니를 굽는 일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움직임은 여전히 굼뜨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이었다.

179쪽) ‘어떤 디저트를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물음처럼 느껴졌다. 최우선 목표는 맛있는, 그래서 먹고 나면 즐거워지는 디저트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에게 완벽한 브라우니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말할 수 있다. 행복까진 몰라도 불행하지는 않다고. 행복의 반댓말이 꼭 불행은 아니다. 행복하지 않아도 불행하지 않다는 말은 많은 것들을 열어놔준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스스로에게 알려줘야 한다. 아직, 불행하지 않다고. 여전히 썩 기분좋은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냥 괜찮을 수도 있으니까.

292쪽) 나는 그저 한 마리 크릴새우가 해류를 따라 흘러가듯 거대한 혼란 속에서 흐르고 또 흐를 뿐이다. 고래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바다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새우로서 살아간다. 싫은 것들을 피하며 가능한 한 즐겁게, 다른 새우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그만이다. 운이 좋다면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행복할 수 있겠지만, 아니어도 괜찮다. 불행하지만 않으면 된다.

다행히 아직도 불행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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