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지은 모든 것들은 인간을 닮았다

그렇다, 나는 외모에 약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이공계 진로 관련 박람회에서 모대학 부스 중 하나에 들어갔다. 희미한 기억으로 짐작컨대 송호창 변호사풍-인물평가를 떠나서 아무래도 이런 스타일의 외모에 약한 것 같다-의 교수가 한 분 있었다. 재료공학과 교수라고 했다. 그날부터 밑도 끝도 없이 나는 재료공학도를 꿈꿨다. 하지만 뿌리가 얕은 나무는 잔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꿈도, 진로도 전혀 상관없는 곳을 향해갔지만 공학은 내게 여전히 흥미로운 분야다. 가끔 밑도 끝도 없이 건축물을 바라보며 ‘저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지난 여름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섰을 때 ‘사람들이 이래서 유럽 유럽하는구나’ 했던 것도, 인간의 손으로 저 돌덩이를 어찌 다뤘을까 하는 경외감에서 나온 감상이었다. 탄소와 산소, 수소 등 원소들로 이루어진 물질들이 복잡하고 아름다운 수식에 따라 정교하게 배치돼 빚어지는 세계. 공학은 이 세계의 지휘자요 실천가다.

하지만 공학은 어렵고 낯설다. 복잡하고 아름다운 원리들의 정교한 배열은 말그대로 난해하다. 그런 이들에게 구조공학자 로마 아그라왈은 책 <빌트>로 발랄하게 말을 건다. ‘이것 보세요. 우리가 이렇게 세상을 만들고 부수고, 연결하고 확장하고, 깨끗하게 만들고 있어요!’

첫번째 대중서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 젊은 공학자는 쉽고 적확한 비유로 건축물들의 은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벽돌이라는 재료의 과학을 빵굽기에 비교한다든가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의 중심잡기를 영화 ‘아마겟돈’ 소행성 폭파작업에 빗대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 독자가 지루해질만하면, 저자는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건축의 원리나 소재의 역사를 재잘재잘 설명한다. 모두 14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도, 덮었던 책을 다시 펴게 만든다. 나만 해도 틈틈이 책을 쪼개읽어야 했는데, 장마다 주제가 또렷히 구분된 덕에 중도포기 없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었다. 읽다보면 이 책이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올해의 과학책’으로 호평받은 이유를 여실히 이해할 수 있다.

타이베이101의 강철추 (c) 위키백과

타이베이101이처럼 신기술의 총합 같은 것들도 결국 기본 원리에서 출발한다는 이야기 역시 흥미로웠다. 한때 세계 최고높이를 자랑하던 타이베이101의 87층과 92층 사이에는 거대한 강철추(660톤)가 걸려있다. 이 추는 지진이나 태풍의 충격을 흡수, 건물의 균형을 유지한다. 바벨탑 이전부터 끊임없이 하늘을 지향해온 인간은 계속 한계를 뛰어넘고 있지만, 높이가 반드시 안전과 함께 가야 한다.

“훌륭한 위생 시스템을 누릴 만큼 운이 좋은 사람들은 변기에서 흘러 내려간 대변이 어디로 가는지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244쪽)”라는 문장에선 빌 게이츠가 떠올랐다.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하나인 그가 지금 꽂힌 주제가 바로 ‘똥’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누군가 설사로 목숨을 잃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눈을 뜬 빌 게이츠는 그 해법을 하수처리 시스템에서 찾는다. 몇백년 전 먼저 발견한 해법이기도 했다. 로마 아그라왈은 이 장에서까지만 똥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지만, 위생만큼이나 불평등한 것도 없다는 사실은 계속 기억돼야 한다.

썰과 팩트가 난무하는 시대라 가끔은 일상이 진탕 위에 지어진 건물 같을 때도 있다. 가라앉지 않으려면 단단한 기둥을 덧대고 불필요한 것들을 배출시켜야 한다. 강풍을 견뎌내는 일만큼 적절하게 흔들려 힘을 분산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 튼튼하고 안전한 건축물을 짓는 일은 그렇게 인생과 닮아있다. 엔지니어는 사고에서 배우고, 실패를 끊임없이 개선하려 하며 이상과 실용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안을 찾아낸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지어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은 결국 인간 그 자체였음을 공학의 세계에서 다시금 확인하는 즐거운 책읽기였다.

템즈 타이드웨이 프로젝트 현장. 출처는 https://www.tideway.london/
템즈 타이드웨이 프로젝트 현장2. 출처는 https://www.tideway.london/
Continue reading “인간이 지은 모든 것들은 인간을 닮았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