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읽고 쓰다

관계 : 시간이 필요해

2016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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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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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는 축복이다. 그러나 이 명제가 늘 참(true)은 아니다. 극단적인 상황만을 뜻하진 않는다. 정도의차이일뿐 축복은 언제든, 얼마든 당혹스러움으로 변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 발 들이는 일과 다름없어 이따금 심호흡이 필요한 순간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주인공 료타와 미도리 부부에게는 심호흡으로도 부족했으리라. 함께 웃고 울며 6년이란 시간을 보내온 아들 케이타가 친자가 아니라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다. 그런데 료타는 의외로 담담한 반응을 보인다. DNA 검사까지 마친 뒤에는 “역시 그랬군”이라는 한 마디로 속마음을 내비친다. 핏줄이 아니라면 아이와 나의 ‘다름’은 절대 ‘닮음’으로 수렴할 수 없는 것일까. 료타는 자신과 달리 승부욕이 없고 느긋한 게이타가 답답했다. “역시 그랬군”이라는 말에는 그런 아이를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성격이 드러난다.

하지만 어린 시절 료타의 모습을 꼭 닮은 류세이도 그와 달랐다. 첫 만남에서 료타는 빨대를 납작하게 물어빠는 아이를 ‘도대체 얘가 정말 내 자식인가’라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럼에도 두 가족은 서로의 아이가 점점 더 각자의 친부모를 닮아갈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교환’을 강행한다. 이 과정에서 케이타는 우연히 자신이 엄마 아빠의 진짜 아들이 아니란 얘기를 듣게 된다. ‘교환’ 뒤 어느 날, 가출한 류세이를 찾으러온 료타의 목소리가 들리자 케이타는 슬그머니 벽장으로 숨어버린다. 

사실 영화 속 상황은 부모라면 절대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다. 어떤 선택이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기에 ‘교환’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도 없다. 다만 질문은 남는다. ‘무엇이 가족인가.’ 

관계는 혈연에 우선한다고 간단명료하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관계’라는 단어를 끌어들이기란 단순하지 않다. 거기에는 시간이 담겨있다. 나만 해도 아이가 태어난 뒤로 일상은 온통 아이와 연결돼있다. 우리 딸은 남편과 꼭 닮아 의심을 하려야 할 수가 없지만, 만약 이 아이가 친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남편은 “그래도 내 딸”이라고 했다. 우리를 보고 웃는 표정, 손가락을 잡았을 때의 감촉, 품에 안았을 때의 살냄새 등등 모든 것들이 겹겹이 쌓여 아이와 우리를 부모-자식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 시간들은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 없고, 단번에 쌓을 수도 없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쁨이 될 수는 없다. 혹은 혈연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

료타는 뒤늦게야 아이에게 달려간다. 케이타의 아빠가 되어온 6년을 깨닫고나서야.굳이 료타처럼 엄청난 사건을 겪지 않아도, 부모는 수시로 아이 앞에서 당혹스럽다. 그때마다 이 멘붕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아이와 부모를 변화하게 만들 것이다. 언젠가 지인이 ‘부모 준비’를 두고 얘기를 꺼냈을 때 “세상에 준비된 부모가 어딨냐”고 답했는데, 이론에 차서 내뱉은 말이 진짜 정답이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심호흡을 한 뒤, 잘 넘기는 일이라는 것도.

덧) 아무래도 아버지의 시각에서 본 영화라 어쩔 수 없었지만 엄마 캐릭터가 너무 소극적으로 그려진 면은 아쉽다. “엄마가 그런 것도 몰랐냐”는 대사와 같은 말, 생각들로 누구보다 상처받고 괴로울 텐데. 또 뻔하지만, 형편을 떠나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빠를 너무 정답으로 단순하게 보여준 점도 아쉽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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