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이 아니라 ‘너 덕분에’

여느 의료행위처럼 출산 역시 자세한 내막은 감춰져있다. 두 번이나 겪었으면서도 내가 이 은밀한 사정을 깨달은 것은 최근에서다.

호흡문제 때문에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진 둘째 상태를 확인하러 갔을 때, 의사는 내게 아이 머리가 가벼운 출혈이 있다고 했다. 정도를 따지면 가장 가벼운 수준이라 시간이 지나면 차차 아물 것이란 설명이 붙었지만 그때 받은 충격은 컸다. 뇌출혈이라니. 한 생명의 탄생이란 숭고하고 아름다움으로 가득하지 않았나. 잊을만하면 출산관련 의료소송 기사들도 눈에 띄였다.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고, 누군가는 영영 과거와 이별해야 한다는 얘기를 접할 때면 나는 그저 가슴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우리의 행운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읽으며 나는 그 운이라는 것을 다시금 곱씹어봤다. ‘아이가 건강하다’를 축복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출산과정에서 호흡이 멈췄던 아기가 다시 숨을 내뱉은 뒤 평생을 아이로 살게된 일을 ‘운’이라고 여기는 것은… 제3자라면 이 한 단어에 담긴 긍정성은 지워버렸으리라. 그러나 ‘동환이 엄마’와 그 가족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축복이라 말한다. 최상이라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행복’을 말하기까지 그들이 얼마나 폭풍의 시간을 겪었을지, 오늘도 그러한지, 내일은 어떨지 미루어 짐작할 수 없다. 발랄함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글이라 더욱 그랬다.

‘너 때문’이 아니라 ‘너 덕분’이라는 말은 쉽게 나오기 어렵다. 요즘 큰애와 나만해도 서로 상대방에게 “너무해”를 외치는 게 하루 일과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라는 금과옥조를 얘기하기는 쉽지만, 자기 뜻을 너무도 솔직하게 감정을 담아 표현하는 행위(줄여서 진상짓)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 매일매일 전쟁이고, 뚜껑이 열린다는 말은 수사가 아닌 팩트다. 느리게 가는 아이의 시간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발달장애부모들은 어떨까.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을 흘리긴커녕 깔깔댔다. 아이를 위해 싸움닭이 되겠다면서도 “나는 그냥 싸움닭이 아니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뚱뚱한 싸움닭이다. 팔뚝도 굵고 다리도 튼튼하다.”라는 이 엄마의 발랄함이 나를 웃게 만들었고 겸손하게 했다. ‘나의 행복’을 찾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매는 모습을 보며 똑같은 고민을 가진 이로서 깊이 공감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온몸으로 즐거움을 표현하는, 저마다의 소리로 등굣길 반가움을 드러내는 장애인들의 솔직함을 알게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 ‘안다고 하면 큰코 다친다’를 매일 체험한다. 그러니 책 한 권 읽었다고 장애인의 삶을, 그 가족의 시간을 이해했고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 할 수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초등학교 때 ‘우리반 바보’를 손가락질하던 경험을, 지하철에서 혼자 큰소리로 중얼거리는 발달장애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쩔쩔매던 일을, 거리에서 마주친 나이든 다운증후군 환자에 깜짝 놀란 기억을 지워버릴 수 없다.

다만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의 아주 조그마한 귀퉁이라도 떼어내어 보려 한다. 그 마음을 ‘다른 이들’을 마주하는 데에, 또 그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조금은 변화시키는 데에 보탤 수 있도록 다짐해본다. 사람값을 똥값 취급하는 사회를 언제까지 물려줄 수는 없으니까. 욕망이라는 말로 우리의 추악함을 가려버릴 수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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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복은 한 방에 터지는 로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축복은 천천히 옷을 적시는 가랑비 같은 것이었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 덕분에 우리 가족은 평생을 갓난아기를 키울 때와 같은 기쁨을 맛보며 살게 되었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감정에 솔직하고,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아들을 보며 나도 같이 순수해지고 나도 같이 행복해진다.

–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장애 아이만이 가진 미덕은 또 있다. 바로 감정에 한없이 솔직하다는 것이다. … 장애아이와 함께 온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자리에 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노래를 따라 부를 때 장애아이들은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흥겨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솔직함’을 택했다.

– 이 세상의 모든 비장애 형제자매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부모는 ‘낳은 죄’가 있다. 그것은 부모 된 자의 업보다. 하지만 너희들은 ‘태어난 죄’밖에 없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러니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더욱더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나는 투사가 되어야 하고 싸움닭이 되어야만 한다. … 그래. 싸우기로 했으면 제대로 하자. 나는 그냥 싸움닭이 아니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뚱뚱한 싸움닭이다. 팔뚝도 굵고 다리도 튼튼하다. 가끔은 힘으로 남편을 이기기도 힌다. 상대가 누구든, 무엇이든. 절대 지지 않겠다!

– ‘좋은 엄마’는 ‘나’를 버려야 한다지만, 왜 꼭 그래야만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엄마인 내가 먼저 행복해야 장애인인 내 아이도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내가 너무 안이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일까? 물론 주변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다해서 내 행복을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나의 여정을 계속 가려 한다면 아마도 죄책감마저 떨칠 순 없겠지.

– 장애인은 삶의 한순간에 짧게 스쳐 간 불쌍한 ‘타인’이 아니다. 언제고 내가 당할 수 있고 내 가족이 당할 수 있는 일을 먼저 겪고 있는 ‘이웃’일 뿐이다. … 장애 이해교육은 단순히 장애인을 이해하자는 교육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기본 인권에 관한 교육이다.

– “몰라서 그런 거잖아. 이렇게 귀여운걸. 마음이 어린 장애인이 얼마나 귀여운데.”

– “그러니까 놀이터 같은 거네? 놀이터에 그네랑 미끄럼틀, 시소가 있으면 저 엄마는 그네만 열심히 탄 거고 엄마는 그네, 미끄럼틀, 시소를 다 조금씩 타겠다는 거네?” …”엄마, 너무 힘들어하지 마. 너무 힘들면 텔레비전에 나가서 도와달라고 해. 배고픈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처럼 엄마도 텔레비전에 나가서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꼭 말해.”

– 발달장애 아이들의 ‘터지는 순간’은 자라면서 점점 줄어들다가 없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을 1년이라도 단축하려면 이 아이들이 배울 기회의 장이 일상 속에서 자주 제공되어야 한다. … 그런데 이런 교욱을 시키려면 부모의 노력만으론 불가능하다. 사회가 도와줘야 한다. 거창한 제도 수립을 말하는 게 아니다. 척 봐도 발달장애인으로 보이는 아이가 난리를 치고 그 앞에 부모인 듯 보이는 사람이 쩔쩔 매고 있으면 본 듯 못 본 듯 ‘시선’을 거두어줬으면 좋겠다.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 아들의 “아갸갸갸”에 응답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차에 오르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뜻 모르는 외계어도 난무한다. 누군가는 “다다다다”, 또 누군가는 “끼야끼야”하며 돌고래 울음 같은 소리를 낸다. 보통 사람이 이 버스에 탔다면 “아이들이 흥분해서 그러는 건가? 지금 옆에 다가가면 위험한 거 아냐?”라며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뿐이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아이는 학교에 가는 즐거움을, 선생님과 친구를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을 ‘인사’라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뿐이다.

– 우리 가정에는 우리 부부가 선택한 이 길이 최상이다. 남편은 ‘장애’에 무심한 듯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나는 나대로 ‘장애도’와 ‘세상’에 한 발씩 걸치고 둘이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 말이다. 남편이 다른 ‘좋은 아빠’들과 같지 않다고 해서 ‘나쁜 아빠’는 아니었다. 나 역시 아들만을 위해 사는 ‘좋은 장애아이 엄마’가 아니라 해서 ‘나쁜 엄마’가 아니듯이. … 아이의 장애가 곧 가정의 장애는 아니다. 이제 우리 가족은 그것을 알게 되었다. 멀고도 험한 길을 돌아 얻은 가장 큰 깨침이다.

– 장애가 있는 아들은 엄마를 변화시켰다. 무교인 내가 아들 덕분에 구원받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나만 잘난 줄 알고 자신만 생각했을 나, 류승연을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약하고 힘없는 고개 숙인 죄인이 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세상의 모든 작고 약하고 힘없는 것들을 비로소 돌아볼 줄 알게 되었고 급기야 인권이라는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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