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이 모자라

매일 저녁 8시 30분이 지나면 아이 방 불을 끈다. 창밖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비출 뿐, 사위가 어둑한 방 안에서 아이는 잘도 움직인다. 장난감을 가져와 놀고, 아기체육관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서랍을 뒤적여 기저귀, 베개 등 잡동사니를 꺼낸다. 그렇게 한참을 시끌벅적하게 보내다 눈꺼풀의 무게를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면 등 돌린 채 잠자는 척하고 있는 내 품안으로 뛰어든다.

때론 여기에 ‘보행기 옵션’이 더해진다. 장난감 등이 싫증나면 딸은 자동차모양 보행기를 만지작거리다 올라타선 버튼을 조작해 이런저런 음악을 튼다. 어젯밤에도 졸린 눈을 비비며 보행기에 올라탄 아이는 어둠 속의 DJ가 되어 내게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Oh, Susanna’를 들려줬다. 중간 중간 ‘빵빵’하는 클랙슨 효과음까지 추가해서. 그런데 갑자기 너무 모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윗집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 골목길에서 개가 짖는 소리, 늦은 귀가를 마친 자동차 소리…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뒤돌아보니 딸은 보행기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렇게 자는 게 아쉬웠니?!” 인기척에 실눈을 떠 ‘꺼내주세요’라며 팔을 벌리는 아이를 보니 웃음이 피식 나왔다. 할 줄 아는 게 늘고, 하고 싶은 게 많아진 생후 16개월은 너무나 빨리 간다. 아이에게는 24시간이 모자라다. 하루하루가 부족하다.

엄마에게도 24시간은 모자라다. 아침 6시 반이면 칼같이 일어나는 따님의 부지런함이 가장 큰 이유지만, 저 시각쯤 일어나지 않으면 모든 일과가 조금씩 늦춰진다. 밥솥을 확인한 뒤 먹을거리를 챙기고 아이를 씻긴 뒤 남편과 함께 어린이집으로 향하기까지는 최소 1시간이 걸린다. 세 가족이 서로의 하루를 응원하며 헤어진 뒤 기자실에 도착하면 숨 돌릴 틈 없이 그날 일정이 펼쳐진다. 요즘처럼 중요재판이 많고 대부분 종일 진행하는 집중심리 방식인 경우는 법조를 맡은 이래 처음 겪는다. 서초동으로 옮겨갈 때만해도 ‘대선 취재보다는 낫겠지, 틈틈이 휴게실에서 쉴 수 있겠지’ 싶었는데… 한여름, 아니 늦겨울의 꿈이었다…(먼산)

엄마와 은우의 시간을 부탁해요!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육아타임이다. 딸이 일찍 자는 편이라 실제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길어야 2-3시간인데,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방문을 닫을 때면 이미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5분만, 10분만 하며 침대에서 뒹굴다 더는 못 미루겠다 싶을 때 씻고 숨을 돌리면 어느덧 밤이 깊다. 의무감에 책꽂이를 둘러보지만 용기보다 체력 없는 자의 손은 TV 리모컨을 찾는다. 다른 집 사정도 비슷하리라. 부모의 날들은 닮아있다.

둘째를 만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시간 결핍’이 더욱 두려워진다. 사람들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엄마아빠도 숨 돌릴 수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먼 이야기다.

하루 전, 최근 본 영화를 주제로 대화하는 후배들 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극장 가는 게 부럽다”는 것뿐이었다. 끼어들 틈이 없어 차돌숙주볶음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극장을 자주 가는 편도 아니었고, 화제로 떠오른 영화가 내 취향이 아닌데도 그 대화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묘한 감정을 안겨줬다. 이 감정의 실체는 여전히 모르겠다. 창피했던 것도 같고, 서글펐던 것도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나는 그저 유체이탈한 기분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멍하니 듣고 있었다.

엄마이기 전에 나였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난 뒤, 나일 때보다 엄마인 시간들이 많았다. 엄마의 시간도 부족한데 나의 시간을 찾기란 더 쉽지 않았다. 공휴일인 오늘만 해도, 종일 아이와 함께 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쏟아 부어야 했다. 그러나 반나절 만에 녹초가 된 나를 본 남편이 ‘혼자서 좀 쉬라’며 배려해준 덕분에 밀린 앨범 정리며, 묵어둔 책읽기며 끝낼 수 있었다. 모처럼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도 멍하니 바라볼 수 있었다.

보행기에서 꾸벅꾸벅 졸 때까지 놀고 싶은 아이처럼, 가능한 엄마와 나의 시간을 적절히 배분해 24시간을 알뜰살뜰히 쓰고 싶지만 역시 어렵다. 둘째가 태어나면 모든 욕심을 버려야한다던데, 시간 욕심 역시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 모든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자꾸 불평만 늘고 있다. 마음이 어둑어둑해지기 전에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엄마의 시간도 내게는 귀한 날들이니까.

Share on FacebookTweet about this on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