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녁

ⓒ Mateus Campos Felipe

“쨍그랑!”

엄숙한 침묵이 지배하던 시간에 균열이 생겼다.

신부님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복사들을 다독이고 비어버린 물병에 준비해온 텀블러 속 물을 옮겨담았다. 피아노 반주는 평소처럼 2절까지만 울려퍼졌고, 성당 관계자들은 깨진 유리와 어지럽혀진 제대를 말끔히 치웠다.

그렇게 다시 침묵의 빈틈이 메어지던 찰나에, 나는 보았다. ‘모든 걸 망쳐버렸어’라는 아이의 얼굴을. 입술을 살짝 깨문듯, 모아진 두 손끝에 최대한 집중한듯 중심을 잡고 서있는 것 같았지만, 그 얼굴은 말하고 있었다. 인간의 호기심은 타인의 불행 앞에서 얼마나 잔인한가. 오랜만에 목격한, 날것의 감정이 그대로 실린 그 얼굴을 나는 자꾸 힐끔힐끔거리고 있었다.

곧 성찬의 전례가 끝났다. 마지막 강복을 주기 전, 신부님은 “갑자기 생각난 얘기가 있다”며 말을 꺼냈다. 자신의 신학교 선배 이야기였다.

“부제 서품을 받고 나면, 제대에서 올라 주교님의 미사집행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부제님께서 너무 긴장을 한 거에요. 순간 제병을 쏟아버렸어요. 다행히 성체는 아니었지만, 아마 그랬으면 더 힘들었겠죠. 어쨌든 제병을 다시 정리하고 미사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제님은 신부님이 되어 지금도 아주 아주 잘하고 계시답니다.”

나는 다시 호기심에 지고 말았다. 두 눈은 아이를 향했다. 그리고 신부님의 이야기는 계속 됐다. 복음 말씀이었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 마태오 복음 18장 12-14절

신부님은 강론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다시 찾듯, 하느님은 회개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이를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판공의 의미, 죄와 고해성사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미사 끝에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내며 너무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 Nishta Sharma

나는 끝까지 아이의 표정을 읽지 못했다. 다만 ‘모든 걸 망쳐버렸어’란 낭패감을 조금은 덜어줄 수 있는 저녁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해서 너무 쉽게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너무 쉽게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길을 잃어버렸음을,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는 일이다. 그때 비로소 그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또 길을 잃거나 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지 않는다.

모든 전례를 마친 뒤 아직 복사복 차림인 아이가 다시 제대 앞에 섰다. 아이는 캔들 스너퍼로 멋지게 촛불을 끄고 돌아갔다. 더 이상 ‘모든 걸 망쳐버린’ 아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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