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3 주사위는 던져졌다

20160103 주사위는 던져졌다

2016년 1월 3일
/
by sost
/ /

실감나지 않는다. 오늘로 딱 10일 남았다. 말 그대로 ‘예정일’이기 때문에 진짜 D-day는 더 앞당겨질 수도, 늦춰질 수도 있다. 아무튼 곧 현실이다. 나는 엄마가 된다. 우리는 부모가 된다. 

휴가 첫 날 만든 기저귀케이크

물리적으로는 준비하고 있다. 필요한 아기 물품들은 다 마련했고 12월 24일부터 휴가 중이니까. 하지만 휴가 초반에는 별 다른 감흥이 없었다. 연말에 연차 휴가를 몰아 쓰겠다고 아등바등 댔던 날들이 준 피로감과 그 날들이 끝났다는 기쁨에 젖어 첫날은 마냥 늘어져 보냈다. ‘산모님, 산모님’이라 불리는 무리에 섞여 기저귀케이크를 만들면서 ‘맙소사 내가 이런 걸 하고 있단 말이야’ 싶긴 했지만. 그 다음 며칠은 마무리할 일이 남아 정신없었고, 어쩌다보니 벌써 해를 넘겼다.

심정적 준비는 부족하다. 정확히는 아무 생각이 없다. 

거창하진 않아도, 매년 이즈음이면 나름의 계획을 세우곤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저 기다리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언제든 출산할 수 있지만, 그게 언제일지 모른다는 것.

어떤 계획을 세워야할지도 잘 모르겠다. 기자로서 무슨 아이템을 취재하고 싶고, 어떤 기사를 쓰고 싶다는 것쯤은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로서, 부모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앞으로의 모든 상황은 내게는 최초의 연속일 테니까. 아주 잠깐 ‘어떤 엄마가 될지 계획해볼까’ 했다가 헛된 상상이다 싶어 그 마음은 가뿐히 버렸다. 주사위가 던져졌지만, 어느 방향으로 말을 몇 칸이나 움직여야할지 전혀 알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다. 

휴가에 적응하며... 허세놀이하던 날

불안하거나 두렵진 않다. 일이 아닌 영역은 대부분 ‘어떻게든 되겠지’라거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심정으로 보내는 편이라 밤낮이 뒤바뀌는 날들도, 빽빽 울기만 하는 핏덩이 때문에 쩔쩔 맬 날들도 그다지 두렵진 않다. 당장은 출산 시기가, 그 다음에는 육아휴직 기간과 생계, 그리고 진로 문제가 걱정일 뿐. 역시 아직 실감나지 않기 때문에 ‘엄마 박소희’보다는 ‘기자 박소희’ 또는 ‘개인 박소희’가 결정하고 고민해야 할 일들만 떠오르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임신 38주 4일이라는 시간을 보낸 방식도 비슷했다.

어쩌면 섣부른 예측이나 다짐을 삼가는 쪽이 나을지 모른다. 게임하듯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일과 부모가 되는 일은 분명 다르다. 아니 비교 대상조차 못 된다. 수학문제 풀 듯 정답이 정해지지 않았고, 혼자만의 힘으로는 더욱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이유도 크다.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겠지. 

‘아이를 사랑하자.’ 

이 정도는 다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짐을 해야할 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누군가 코웃음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일을 책임감이나 모성애 같은 거창한 말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워킹맘’이라는 압박감에 갇혀 잊고 싶지도 않다.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가장 어렵고 가장 쉽게 잊힌다. 내가 가장 잘 저지르는 실수다. 그러니 약간의 각오가 필요하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조만간 엄마가 되니까. 내가 많이 사랑해야 할, 사랑하는 딸을 만나니까.

2016년의 첫 날, 너를 기다리며...

Share on FacebookTweet about this on Twitter

2 Comments

  1. 허니 2016년 1월 18일 11:55 오전

    아무도 안오는 여기는 미지의 영역!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ㅎㅎ

  2. 소 희 2016년 1월 18일 3:01 오후

    미지의 영역 맞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저 그를 쓴 지 얼마 안 됐는데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는 훨씬 빠르네요 ㅎ;

Post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