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어디로 갔을까

모두 어디로 갔을까

2017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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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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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목금 저녁, 법원청사 중앙현관을 나서면 OO호 OOOO라고 쓰인 검정 세단들이 줄지어있다. 몇달째 재판을 받고 있는 삼성그룹 임원들의 승용차 같다. 법정에서 그들은 한낱 피고인일 뿐이지만 밖에서 그들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 삼성에 다니는 지인들을 만났을 때 회사 자금 500억 원은 별 것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1억 원 정도여도 마찬가지였다. 국회 인턴시절,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서 스스럼없이 50억이니 100억이니 더하고 깎는 일을 볼 때처럼 공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10만 원, 아니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에도 쩔쩔 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숨어버린 것일까, 숨게 만든 것일까.

‘나는 운이 좋았다.’ 줄곧 해온 생각이다. 하지만 그 운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운 좋게 대학 졸업장을 땄고, 운 좋게 부모 도움으로 전셋집에서 살고, 운 좋게 아이까지 낳아 키우고 있다. 그리고 운 좋게도 나와 가족들은 건강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신세질 때도 있지만 상대방의 존재가 나의 일상을 압도할 만큼 연결돼있지 않다. 이 모든 일들은 다 운이 좋아서다. 서로의 헐벗음을 드러내며, 서로의 어깨에 근근이 기대어 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형편에 처해졌다는 운 덕분이다.

글로벌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여러 정황들과 추락한 전직 대통령의 누렇게 뜬 얼굴, 그리고 기약 없이 ‘사장님’을 기다리는 검정 세단들을 보며 요즘 내가 붕 떠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거대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이지만 지금 서 있는 곳, 바라보는 것, 만나는 이들에 가려진 사람들을 마주칠 때면 다시 한 번 내 발은 지금 어디를 딛고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건 식상해, 늘 하던 얘기잖아’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피곤한 얼굴의 중년여성을 보며 ‘몇 십 년 뒤 나는…’을 떠올리는 자신을 보며 흠칫 놀란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나.

내가 만난 어느 스물두 살 청년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수억 원짜리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 정도로 부유층이었으나,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사업이 망하여 집을 통째로 날렸다. 남은 돈으로 맥주집을 차렸으나 카드 대란으로 망해버렸고, 지금은 구청이 제공하는 자활근로로 근근이 먹고 산다. 그런 아버지를 둔 스물두 살 청년은 대학 진학의 꿈을 접은 대신 고등학교 때 만난 여자 친구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결혼과 출산의 순서가 반대였다고 쓰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제 부부는 도너츠 매장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아침 7시, 젊은 엄마가 먼저 출근한다. 아침 9시, 젊은 아빠는 세 살과 두 살짜리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뒤 같은 매장으로 일 나간다. 오후 5시, 퇴근길에 젊은 엄마가 아이를 찾아온다. 저녁 11시, 젊은 아빠는 매장 문을 닫고 퇴근한다. 엄마와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다. 아이가 보채어 잠을 설치게 되면 젊은 부부는 짜증을 섞어 싸움을 시작한다. 주말에도 매장은 문을 닫지 않고, 부부는 각자의 피곤을 어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일하여 두 사람은 월 200만원을 번다. 그래서 일체의 복지혜택에서 제외된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 20만 원을 주고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다. 단칸방 앞에 화장실, 주방, 세탁실을 겸하는 1평의 공간이 있는데, 어차피 식구가 모여 밥 먹는 일은 희귀하다. 그나마 지금은 사정이 좋은 편이다. 둘째 아이를 낳고 일주일 만에 마땅한 거처도 없이 거리로 나앉았다. 찜질방에서 갓난아이를 포함한 네 식구가 한 달을 지냈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도너츠 매장에서 일하는 젊은 아빠는 맥도널드 매장에서 아이들의 아침을 해결하고 있었다. 으깬 감자를 먹으며 콧물 흘리는 두 아이를 두 팔에 안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잠을 좀 잤으면 좋겠어요.”

그가 더 나은 직업을 갖고, 더 나은 집에서 살려면, 교육을 더 받아야 한 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부유층·중산층 자식은 대학원 진학, 공무원 시험, 대기업 취업 등을 위해 2~5년씩 틀어박혀 미래를 준비할 수 있지만, 이들에겐 당장 오늘이 문제다. 오늘의 문제를 누군가 해결해 주지 않는 한, 스물두 살짜리 도너츠 매장 직원에게 검정고시·방송통신대·직업교육·인턴취업 그리고 노동운동과 정치행동은 모두 말장난에 불과하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청년은 고등학교 진학 무렵부터 가계 부양의 압박을 느낀다. 부모가 이혼했거나 실직자이거나 알코올 중독 상태이거나 질병을 앓고 있으므로, 자식들은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중학교 때부터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그들은 고교 졸업(또는 학업중단)과 동시에 또 다른 비정규직을 얻어 일하는 것에 아무런 저항감과 반발심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 말고 무슨 선택이 가능하겠는가. 그들에겐 정말이지 미래를 위해 투자할 단 1년의 여유가 없다.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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