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마움

아침마다 눈은 찡그리고 입으로 숨을 턱턱 내뱉으며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하지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바람이 시원하다. 편의점 앞이나 한강변에 털썩 앉아 누군가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기 좋은, 여름밤이다.

그래서일까? 부쩍 맥주가 생각난다. 인스타를 뒤져보니 은우를 낳기 전 마지막 맥주는 2015년 4월 30일 이태원 폭스홀에서 마셨다. 이태원 특유의 시끌벅적하고 허세스러운 분위기에 취해 홀짝 댔는데,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리진 않았던 것 같다. 이토록 적은 양에도 다음날 제대로 숙취가 남아 있어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시 맥주를 만난 것은 지난해 12월 3일이다. 그보다 이틀 전 엉겁결에 단유를 시작했다. 아이의 몸에서 점점 젖냄새가 희미해져가는 일은 아쉬웠지만 다시 찾은 자유는 반가웠다. 다시 만난 맥주는 더 반가웠다. 차가운 필스너 우르켈에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딱 한 달만에, 좋은 안주를 두고도 술맛이 나지 않아 이상하다 했더니… 자발적이면서도 비자발적인 금주가 또 한 번 시작됐다.

두번째는 여러모로 처음과 같지만 다르다. 체중이 불어나는 속도, 입덧이 끝나지 않는 상황, 푸석푸석해진 얼굴은 지난 번과 비슷하다. 그닥 짙어지지 않은 임신선과 목주름, 얼큰하거나 고기류를 좀더 찾는 입맛, 육아와 동반하는 어려움 등은 차이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유독 큰 변화는 맥주를 향한 갈망이랄까?

계절도 계절이고, 몸과 마음은 쉽게 지치는 시기여서 맥주의 청량감이 주는 착각이 더 그립나보다. 차가운 맥주를 꿀꺽꿀꺽 넘기는 순간만큼은 머리 아픈 일도, 가슴 아픈 일도 잊을 수 있었으니. 결국 며칠 전엔 참지못하고 한 캔 땄다. 비록 무알콜이었지만, 보리음료가 주는 착각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틈만 나면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란 고민으로 메마른 한숨만 내뱉는 요즘인데, 아주 잠깐 잊을 수 있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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