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뇌물사건 1심 판결문을 보고…

삼성 뇌물사건 1심 판결문을 보고…

2017년 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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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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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였다면, 지난주 금요일은 내게 100%짜리, 완벽한 불금이었다. 2월 중순경 서초동에 복귀한 뒤 몇 달째 지켜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공판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평온한 금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물론 신생아를 돌보는 날들은 하루하루가 너무도 치열하다). 그래도 궁금했다. 지난 봄과 여름, 무거워져가는 몸을 이끌고 머리를 쥐어짜며 이해하느라 애먹었던 이 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매듭지어졌는지 알고 싶었다. 결국 판결문을 출력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틀간 틈틈이 판결문을 읽어봤다. 별지 포함 268쪽에 달하는 내용을 살펴본 내 결론은 ‘잘 정리됐다’였다. 이 사건은 심리 자체가 ‘고난의 행군’이었고, 주요 쟁점과 사건을 구성하는 사실들의 조각이 너무 많았다.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그날그날 공판 때 나오는 얘기들로만 기사를 쓰면 그야말로 ‘중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나 같은 기자나부랭이가 그랬는데 판단을 해야 하는 재판부 부담은 어땠을까. 어느 정도 심증을 굳히고 판결문 작성에 들어갔겠지만, 그 내용을 정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노동강도와 사안의 중요도 등을 감안하면, 재판부의 유무죄 판단에서 크게 ‘무리수’로 보이는 대목은 없다.

하지만 ‘논리’는 ‘참’이 아니다. 판결에 수긍하면서도 몇몇 군데에선 동의하기 어려웠다. 일부 무죄가 나온 뇌물과 횡령, 재산국외도피 부분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등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5년형을 선고 받고 서울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특검은 1) 삼성이 최순실에게 승마훈련 관련 용역대금 명목으로 213억 원(실제 전달된 금액은 77억 9735만 원) 2)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으로 204억 원 3)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 지원금 16억 2800만 원 등 총 433억 2800만 원을 ‘뇌물’로 줬다고 기소했다. 여기서 재판부는 승마지원 72억 9427만 원과 영재센터 16억 2800만 원만 뇌물로 인정했다. 또 이 부회장이 뇌물 공여 액수만큼 회사 돈을 횡령했고, 승마지원 규모만큼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혐의도 일부만 유죄로 판단했다. 그 결과 횡령액은 80억 9095만 원(승마 부분이 64억 6295만 원), 재산국외도피 규모는 36억 3484만 원으로 정리됐다.

승마쪽 뇌물혐의에서 ‘무죄’ 판단이 나온 5억여 원은 최순실이 독일에서 사용한 차량 3대와 마필운송차 대금 등에 해당한다. 횡령 액수는 이보다 8억여 원 줄어들었는데 그 이유는 말 ‘살시도’의 대금과 보험료가 빠졌기 때문이다. 또 재판부는 재산국외도피를 따지며 삼성이 삼성전자 명의 독일 계좌에 예치한 42억 5946원은 제외했다. 법원은 최순실의 유령회사 ‘코어스포츠’와 용역계약 체결 당시 삼성은 살시도와 차량 등의 소유권을 넘길 생각이 없었다고 봤다. 다만 2015년 11월 최순실의 요구로 살시도의 소유권이 옮겨갔다고 판단, 뇌물로 인정했다. 삼성이 코어에 직접 송금한 36억여 원만 재산국외도피로 인정한 이유다.

하나의 용역 계약서를 두고 특검은 관련자 진술들 정황을 덧붙여 뇌물죄와 횡령죄, 재산국외도피죄 등을 구성했다. 변호인단은 서류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를 설득한 쪽은 변호인단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릴 국정농단 사건 59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러나 이미 최순실의 영향력을 알았던 삼성이 단순히 서류상 예산명목으로만 213억 원이란 숫자를 썼다고 믿을 수 있을까? ‘용역계약 체결 당시’를 기준으로 횡령과 재산국외도피 규모를 산정한 재판부의 계산법에도 의문이 남는다. 특히 유죄로 판단한 금액에서 살시도 대금과 보험료를 뺀 부분이 눈에 띈다.

재판부는 살시도의 패스포트에 소유주가 ‘삼성’으로 쓰여 있던 건 위장용이 아니라는 변호인단의 주장을 믿었다. “피고인들은 이 사건 용역계약 체결 당시부터 코어스포츠가 최순실이 지배하는 회사임을 인식했다”며 용역계약 자체를 뇌물공여를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판단한 것과는 다소 결이 어긋나는 부분이다. 또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과 독대 때 ‘좋은 말도 사주라’고 요구했음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살시도는 날렸을까? 선뜻 이해가지 않는다.

재판부의 무죄 결론이 납득 가는 것도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합병 후 신규 순환출자고리 등 개별현안을 박근혜-이재용의 거래 대상(부정한 청탁)으로 인정하지 않은 대목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 현안들과 이재용 부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연결고리는 다소 헐거웠다. 당사자는 물론 정부 부처와 삼성그룹 관계자들 모두 ‘삼성의 청탁은 없었다’ ‘청와대 지시는 없었다’고 부인했고, 남은 것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업무수첩 등 간접증거뿐이었다.

이 간접증거들도 약간씩 구멍이 있었는데, 1심 결과만 보면 특검은 그 구멍을 메우는 데에 실패했다. 그런데 그 헐거움에도 불구하고, ‘이게 다 박근혜-이재용 때문’이라는 특검 논리 자체는 ‘승계작업 같은 건 없다, 부정한 청탁은 증거도 없는 억지 주장’이라는 변호인단 얘기보다 설득력 있었다. 드문드문 여백이 존재하지만 사건의 퍼즐을 짜맞췄을 때 나타나는 그림은 ‘박근혜-이재용’이 아니면 완성되지 않는 듯했다. 물론 형사책임을 물을 때는 엄격한 입증이 필요하니 이 여백을 채우지 못한 것은 특검의 역부족이다. 이 부분도 항소심에선 특검과 변호인단이 치열하게 다툴 가능성이 높다.

글이 길어졌다. 정리하면 1. 이재용 판결은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 2. 하지만 (편파적인) 내 눈에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3. 항소심도 ‘고난의 행군’일 것 같다. 그러니 법원 출입기자들이여, 파이팅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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