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6 계속 해보겠습니다, 딴짓

20170926 계속 해보겠습니다, 딴짓

2017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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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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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느라 바쁘신 우리 둘째느님.

100일 전까지 아기는 대략 2~3시간 간격으로 젖을 먹고, 하루의 대부분을 잠든 채로 보낸다. 그런데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다보면 실제로 엄마에게 주어지는 ‘여백’은 1~2시간 정도다. 이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 육아라는 노동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쉬이 갉아먹는다. 이때 휴식을 취해야만 조금이라도 또렷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1년 전 나는 이 귀중한 시간을 어떻게 쓸지 몰라 우왕좌왕, 전전긍긍했다.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까. 그때는 내 몸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 아까운 시간을…’하며 뭐라도 해보려는 욕망이 수시로 부딪쳤고, 이도저도 아닌 결론으로 치달았다. 밤수로 늘상 피곤한 데도 낮잠을 안 잘 때가 많았는데(다행히 젖은 잘 나왔다), 막상 짬짬이 책 한권 펴보려면 이내 “으앙”하는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결국 하루하루가 내 맘대로 되지 않아 우울하고 불안했다.

딴짓1, 남편이랑 단둘이 외식.

두 번째 출산 뒤 “둘째는 좀 편해?”란 질문을 많이 듣는다. 사실 편한지는 모르겠다. 직수나 급성장기로 고생한 걸로 치면 더 힘들기도 하다. 다만 ‘요령’이 생겼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나는 내게 주어진 여백의 시간 동안 발을 동동 구르지 않는다. 어렵지만 책 한 권 펼쳐보고, IPTV로나마 영화 한 편 볼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어제는 과감하게 극장에도 진출했다. 아이가 배고프다는 연락을 받고 중간에 뛰쳐나오긴 했지만… 아무튼 ‘처음이 아니라서’ 가능한 일들이다.

엄마이기 전에 나였다. ‘나’들에게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제법 큰 도전이다. 하지만 이 시도들은 매우 중요하다. 육아란 아무리 단계를 깨고 깨어도 끝나지 않는 게임처럼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과제들이 쏟아진다. ‘오구오구 내 새끼 하트 뿅뿅’만으로는 하루가 다 가질 않는다.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고, 마음의 헛헛함까지 채워지지도 않는다. 이 상황이 반복되면 모든 일은 괴로움이 된다. 엄마는 엄마라서 하루하루에 치여 간다. 결국 남는 것은 괴로움, 한숨 같은 감정들로 버무려져 얄팍해진 자아다. 모두에게 좋지 않다. 나 자신에게도, 아이에게도.

오늘로 출산 55일째다. 그동안 4권의 책을 읽었고 영화 세 편을 봤다(하나는 끝까지 못 봤지만). <백 사람의 십년>은 오랫동안 관심 가져온 과거사 문제를, ‘진정한 사과’라는 말이 당사자에게는 실제로 어떻게 다가가는가를 고민하게 만들었고 <바깥은 여름>은 ‘상실’이라는 감정을 곱씹어보게 했다.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를 읽으면서는 삶의 에너지라는 것을, “잎의 착실한 노력”이라는 것을 되새겼다. <왕좌의 게임>은 오랜 기억 속에서 시즌1 속 장면들을 더듬거려가며 읽고 있다.

언젠가 그와, 친구들과 함께 갔던 가을과 겨울의 남산,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여름의 남산을 영화 <최악의 하루>를 보며 떠올렸고, 가장 반짝이던 사람이 빛을 잃어가는 슬픔을 <스틸 앨리스>를 보며 절실히 느꼈다. 어떤 죽음을 원하는지도 다시 생각해본 것 같다. <아이 캔 스피크>는 비록 끝까지 보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예술작품이 감정선을 건드렸을 때 흘릴 수 있는 눈물 말이다.

읽고 있던 책을 덮고나서, 눈을 떼지 못했던 영화의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 아이를 바라본다.

내 하루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간접경험하고 나면 엄마로서, 아내로서, 나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목적 없는 폭력이란 얼마나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며 얼마나 사람을 쉽게 불행하게 만드는지, ‘관계’가 일상을 얼마나 크게 차지하며 몸을 쓰고, 시간을 견뎌내는 일이 사람을 얼마나 빛나게 만드는지 등등을. 그리고 그 생각들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고, 잘 곱씹어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조금 더 나은 나, 엄마,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다른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딴짓2, 미완의 영화보기… 팝콘은 다 먹었음.

그래서 어려워도, 조금 쌓은 요령을 바탕으로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자꾸 딴짓을 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물론 아직은 친정찬스 덕분에 조금 더 쉽게 요령을 피울 수 있는 형편이다. 곧 ‘독박육아’가 시작되면 ‘둘째맘의 여유’ 이런 단어는 입에 올리지도 말라고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래도 다른 생각들이 좀더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나라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준다고 믿는다. 그러니 어찌 되든, 계속 딴짓을 해봐야겠다. 다른 생각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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