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 하지만.

첫 애를 낳고 복직한 주였다. 아이 돌을 치르러 휴가를 내고 시댁에 갔는데 평소보다 술이 당기지 않았다. 돌잔치 전날, 토요일의 무료함을 느낄 새 없이 몸이 안 좋았다. 감기도 아닌데 감기 같은 통증. 이미 생리예정일도 일주일여를 넘긴 터라 ‘설마’하는 마음에 남편에게 임신 테스트기를 부탁했다. 외진 집을 떠난 지 약 2시간 뒤에야 돌아온 그는 하나는 좀 더 예민하고 하나는 보통이라는 약사의 설명을 덧붙이며 비닐봉지를 건넸다.

결과는 모두 두 줄. 내 인생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남편에게 “어떡하냐”며 테스트기를 보여줬다. 아이는 하나로 충분하다던 그는 내 예상과 달리 무척 기뻐했다. 얼마 전 남편은 실토했다. 일부러 오버했다고, 안 그러면 네가 너무 실망할 것 같았다고. 나는 약간 황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해갔다. 그때 그가 웃어주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때 그가 웃었기에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의 프롤로그를 읽으며 10개월여 전 나를 떠올렸다. 저자가 카페에서 발견한 임신 테스트기 주인공의 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모든 아이는 귀한 존재라지만 생각 못한 시기에 찾아온 아이는 일단 당혹감을 안겨준다. 내 삶이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른다는 일생일대의 위기의식. 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는 ‘일단 GO’를 택했고 지난여름, 눈이 맑고 참 예쁘게 웃는 둘째를 만났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장면에는 얄궂게도 늘 이 접속사가 등장한다.

아이가 둘인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벅차다. 요즘 나는 ‘지금이 인생 최대의 고비일까’ 수없이 자문한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일을 참 좋아했고, 그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행복했다. 첫애를 낳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그토록 좋아하던 일을 다시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불안했다. 이왕이면 새로운 일로 다시 시작해보자는 다짐도 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둘째가 생기며 상황이 급변했다.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러운 만남. 자신이 없었다. 앞으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여전히 그렇다.

“나와 하율이는 당신의 허들이 아닌 발판이에요.”

큰애를 낳자마자 일본어학원에 등록한 저자가 수유텀에 맞춰 JLPT 시험을 보러가기 전날 남편은 이런 편지를 건넸다고 한다. 나는 내 속마음을 들킨 것마냥 뜨끔했다. 아이를 곁에 두고도 나는 아이와 함께 살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을, 아이를 덧셈이 아닌 뺄셈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단지 ‘나’를 지키고 싶다는 이유로. 그런데 그런 ‘나’는 누구일까?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지만, 엄마가 된 나는, 내가 아닌 걸까?

이 답은 오늘도 찾는 중이다. 겨우 두 살짜리 엄마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 나는 우주 역사상 최초로, 아이를 키운다는 경험을 하고 있어서 모든 게 서툴고 낯설고 힘겹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은지 모르겠다. 어떤 날은 내가 얼마나 최악인지를 깨닫고 엉엉 울 정도로 후회한다. 매일매일 캄캄한 미로 속을 더듬거린다. 다만 계속 걷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옆에 아이가 있다. 은우와 지우가 있다.

요즘 은우는 제법 감정표현이 늘었다. 좋고 싫은 것,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구분한다. 콩순이 병원놀이 세트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한다. 작년 이맘 때 걸음마를 떼는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봤는데 이제는 층간소음 탓에 말려야 할 정도로 쿵쿵 발을 구르며 뛰어다닌다. 머지않아 지우도 그럴 거다. 그리고 종달새처럼 두 자매가 엄마, 엄마 거리겠지, 사랑한다며 안아주겠지.

바라건대, 그때에는 엄마인 나도 조금은 나아졌길 바란다. 아이가 자란 만큼 나도 성장했길 빈다. 우리가 그렇게 나란히 걷고, 또 각자의 길을 걷다가도 다시 만나 어깨를 다독여줄 만큼 클 수 있길 기도한다. 나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으니까, 매일매일 엄마가 되는 중이니까.

“흉터 없는 깨끗한 몸보다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몸이 더 재미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될 기회인 것 같다. 자식이 아니면 내가 누구를 상대로 이런 사랑을 해보겠는가. 화낼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 힘으로 누를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

“수연씨, 왜 인간이 아이였을 때를 기억 못 하는지 알아요? 내 생각에는 아이를 키우면서 직접 보라고 그런 것 같아요.”

“불가능한 상상을 자꾸 한다. 서른 살의 내 딸과 서른다섯 살의 내가 같이 영화를 보고, 여행을 하고, 맥주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상상. 지금 당장, 서른 즈음의 내 딸을 만나고 싶다. 내 딸이 서른 살쯤 됐을 때 동년배의 내가 이야기를 나눠주고 싶다. 엄마와 나와 하율이, 하린이를 생각하면 그런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았다. 이 길이 맞는지 내가 좋은 선택을 했는지, 계속 가면 뭐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건 비혼이나 비출산을 선택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걸 감당할지, 저걸 감당할지, 이 행복을 누릴지 저 행복을 누릴지, 그저 결정할 뿐이다. …(중략)… 우리 모두 삶이 주는 버거움을 잘 감당해보자. 깻잎이든 돈가스든, 선택한 걸 맛있게 먹으면서.”

“유독 자식에 대해서만 ‘내가 너를 다 안다’고 자신하는 건 오만이다. 다만 이 오만이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게 슬프다. 자식이 철이 들수록, 그러니까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될수록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 영역이 늘어간다.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할수록 비밀이 늘어가는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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