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쥔 것

‘질투는 나의 힘’이란 문구를 처음 만났을 때, 잠시 숨이 멎었다.

‘저거였구나. 내 삶의 원동력은.’

흔히 욕심이라 이름 붙여온 감정과 감상은 질투였다. 한 발 아니 반 발 앞서간 사람, 손가락 하나라도 더 마음이 넓은 사람, 손톱만큼이나마 더 여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늘 안달복달했다. 지금 여기가 아닌 저기에 가고 싶었다.

그런 많은 질투들이 모여 오늘의 내가 됐다. 애초에 기자란 일을 택한 것도 질투심의 발로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까지 나를 꽤 괜찮은 방향으로 이끌어줬다. 부족함을 말하면야 끝도 없지만, 나는 질투하고 또 질투하며 그 질투의 무게를 견뎌내기 위해 나름의 원칙을 세워왔고 거기에 맞춰 일해왔다. 일정수준 이상에 오르기 위해 발을 동동 굴러왔다. 그게 버겁거나 숨막히지 않았다.

요즘 나는 질투에 갇혀버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 질투가 맞는 것인가를 의심하며.

이 직업의 기본은 정보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서 의미 있는 정보를 받아서 대중에게 전달할 형태로 가공하는 것이 일의 시작이요, 끝이다. 하지만 정보를 찾아내는 일은 어렵다. 관이 철저히 통제하는 정보의 경우라면, 더더욱 난감하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이라도 찾아야하는데 그 모래사장이 애초에 거대한 철벽에 에워싸여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장벽 같은 느낌이랄까. 드래곤이라면 그 장벽을 날아서 넘어가기라도 하겠는데 팔 두 개, 다리 두 개 달린 비루한 인간은 그저 장벽의 위용에 압도당하고만 있다.

이런 날들이 계속 돼 한숨만 푹푹 쉬다보니 별별 생각이 들었다. 단순했던, 그래서 삶의 주기둥이 ‘일’인 나를 관찰하고 회의했다. 한 차례 태풍이 지나가자 번뇌는 잦아들었다. 하지만 사그라들진 않았다.

그 번뇌 속에서 답을 찾으려 허우적대다가 결국 무릎을 짚고 다시 일어서는 게 나였다. 당장은 맨손일지라도, 무언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란 믿음을 놓지 못하는 게 나였다. 그런 내가 쥐고 있던 것은 믿음이나 소명, 직업의식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일을 두고, 믿음이나 소명, 직업의식 등을 부정하는 시대를 부족한 깜냥으로 버텨내는 날들이 버겁다. 어쩌면 내가 깨진 유리조각을 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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