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한 번이라도 무모한 사람이었느냐

너는 한 번이라도 무모한 사람이었느냐

2012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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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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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터 프로젝트
8점

늘 ‘안정지향주의자’였다. 한때 집안이 망했다는 경험 때문만은 아니었다. 열여섯부터 자취를 시작한 이유가 절대적이지도 않았다. 맏이라는, 태생적 책임감 역시 전부는 아니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바둑판 같은’ 성격도 일조했다. 우울과 몽상에 젖어 침울의 늪을 기던 때도 있었지만, 결론은 늘 ‘잔잔하게 살자’였다. 그 잔잔한 일상을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고파서 기자를 꿈꿨을지도.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나는 딱히 무모한 적이 없었다.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가끔은 부럽다. 누군가의 ‘무모한 열정’이. 뜨겁지 않았다기보다, 무모하지 않았기에 샘나는 모습이다. 머나먼 영국땅의 한 청년이 쓴 <토스터 프로젝트>를 읽으며 샘솟은 감정 역시 질투였다.

토머스 트웨이츠. 또 한 번 ‘질투는 나의 것’임을 일깨워준 사람의 이름이다.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디자인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2008년 11월 토스터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식빵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팡’하는 소리와 함께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식빵이 튀어나오는 그 토스터말이다. 왜 하필이면 토스터일까. 그는 “토스터는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3.94파운드짜리 토스터를 구입한 후 분해한 사진 ⓒ Daniel Alexander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 중에 출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게 있다면 어떨까? 토스터 같은 물건들을 만드는 비용 중 많은 부분이 감춰졌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평등하게 돌아간다면? 우리가 내리는 판단의 기준들이 왜곡되어 있다면? 토스터는 하나의 상징이다. 우리가 사용하긴 하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닌, 갖고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아쉬울 것 없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갖고 있기도 쉬워서 하나 샀다가 고장 나거나 더러워지거나 낡으면 쉽게 내버리는, 그런 물건들의 대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이게 ‘진짜 이유’ 같다. 그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더글러스 애덤스 저)>를 너무 좋아했다는 것이다.

실은 내가 더글러스 애덤스를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떤 도움도 없이 홀로 내버려두면 그는 토스터조차 만들 수 없었다. 겨우 샌드위치 정도나 만들 수 있을까?” …(중략)…오, 하느님. 만일 내가 낯선 행성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칼이라도 하나 만들 수 있을까? 애덤스가 그려 낸 상황은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지금의 존재양식을 가능케 해주는 기본적인 기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용적인 능력을 상실했다는 건 별반 새롭지 않고, 보통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중략)… 대참사 이후에 사람들은 어떻게 빵을 구울까?

프로젝트 시작 전 토머스는 마트에서 가장 보통의 토스터를 3.94 파운드에 구입했다. 역설계를 위해 이 토스터기를 분해한 결과 부품은 400여개에 달했다. 모든 부품을 일일이 제조하기엔 시간도, 비용도, 지식도 부족했다. 결국 그는 강철과 운모, 플라스틱, 구리, 니켈만 직접 구해서 토스터를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이 ‘무모한 도전’은 철광석 캐기로 시작한다. ‘모든 부품을 맨손으로 만든다’는 규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재료, 그러니까 땅에서 나는 것들을 가지고 만든다는 뜻이다. 토머스는 친구와 함께 기차를 타고 런던에서 224km 떨어진 클리어웰에 위치한 철광으로 이동한다. 거기서 얻은 40kg짜리 철광석에서 강철을 얻어내기 위해 수제 용광로를 만든다. ‘가내 수공업으로 제작한다’는 규칙에 따른 것이다.

재밌는 점은 이때 유용한 지식이 현대 교과서가 아니라 16세기 도서 <광물에 관하여>였다는 것이다. 물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용광로에서 강철을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지식층을 겹겹이 쌓아왔다. 양은 방대해졌고 깊이는 끝없어졌다. 결국 그 지식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아는 사람만 안다. ‘어떤 도움도 없이 홀로 내버려두면 토스터조차 만들 수 없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한국 사람이야 빵을 못 구우면 라면을 끓이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못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9개월 동안 1187.54파운드(우리 돈으로 200만원 넘는 금액)를 들인 끝에 토스터가 완성됐다.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토스터와 흡사한 모양에 전원을 공급하면 열판에 불이 들어오는. 애석하게도 그의 최종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토머스 트웨이츠표 토스터는, 식빵이 아닌 자신을 구워버렸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토스터의 세계ⓒ 토머스 트웨이츠(http://www.thomasthwaites.com)

그럼에도 우리의 토머스는 낙담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분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한다.

나는 이 프로젝트가 부분적인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 이유는 첫째,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둘째, 구리 전선도 아니고 플러그도 아니고 철제 프레임도 아닌 열판이 뜨거워졌다. 다시 말해서 뜨겁게 만들려고 했던 바로 그 부분이 정말로 뜨거워진 것이다. 너무 뜨거워진 게 탈이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내 토스터는 너무 잘 작동한 게 문제였다. 셋째, 내 토스터는 그 짧은 생에서 해낸 일보다 더 많은 것을 죽음을 통해 이루었는지 모른다. 내게 토스터 프로젝트는 일종의 모험담이 되었다. (약간 모호할 수도 있지만) 이 프로젝트의 메시지가 여러분들에게도 전해졌기를 바란다. …(중략)… 만일 내가 토스터를 맨손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렇게 세상물정 모르고 천진난만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런 시도를 했을까? 지혜와 지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지만, 무언가를 실제로 시작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될지 절대 알 수 없다.

대단한 교훈을 주려고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시작’했을 뿐이다. 무모한 열정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 계속 밀고 나갔던 것이다.

이 책에서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비자로 살아가며 잊어가는 세계’ 혹은 ‘소비만능주의 속에 파괴되어가는 자연’ 등등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저자 역시 “제품의 실제 비용은 감춰져 있다”며 “우리가 내버린 오염물질이나 쓰레기는 아예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대가를 치를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이후 우리는 너무 손쉽게 많은 물건을 얻고 살아가게 됐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환경오염 등의 폐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다. 매년 북극의 얼음이 녹고 기상이변으로 사람과 자연이 상처입어간다. 하지만 그걸 빤히 목격해도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기란 쉽지 않다. 녹아버린 빙하 위에 갇힌 북극곰을 본 다음날도 우리는 나무 젓가락을 쓰고, 플라스틱용품을 아무데나 버린다. 이 모든 행동 뒤에 감춰진 비용은, 아마 계산불가능할 거다.

하지만 저자가 ‘토스터 프로젝트’를 통해 진짜 말하고 싶었던 건, 아마 ‘맨손으로 하는 일’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철광석을 캐러 224km 떨어진 광산까지 찾아가는 그런 무모함말이다. 그가 보여준 ‘무모함’의 속뜻은 ‘다름’이다. 아무도 토스터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트에 가서 사면 되니까. 토스터를 만든다는 건 기존 방식과는 다르게 살겠다는 선택이기도 하다. 안정을 택하는 자는 그만큼 변화를 지양한다. ‘다름’은 도전보다는 두려움이 된다.

웬지 배가 아팠다. 이 무모한 청년은 일종의 산봉우리를 점령한 셈이다. 누구도 쉽사리 거부하지, 아니 시도하지 않는 ‘당연한 것들’과 작별을 했으니까. 지혜와 지식이란 이름으로 쉽게 얻고 쉽게 버렸던 것들에게 안녕을 고했으니까. ‘과연 내게 가능할까’라는 의심만 가득한 나로선 그저 눈을 가늘게 흘겨 뜰 수밖에. 어쩌면 이 질투심이 ‘안정지향주의자’에게는 제법 큰 균열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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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HIDEO 2015년 5월 17일 2:44 오후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2. 소 희 2015년 5월 19일 9:31 오전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오겠다는 말씀도 기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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