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엔더의 게임
8점

누군가 죽고, 짓밟히고, 무너져야만 끝나는, 패배한 자의 삶은 폐허가 되어버리는 것이 전쟁이다. 언젠가 황현산 선생님은 “전쟁은 단순한 추상명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포탄이며, 구덩이에 파묻히는 시체 더미이며, 파괴되는 보금자리이며, 생사를 모른 채 흩어지는 가족”이라고 말이다.
소설 <엔더의 게임>은 그런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아주 먼 미래의 지구, 그곳에 외계의 지적 생명체 ‘버거’가 침공해왔다. 두 번째 전쟁에서 전멸의 순간까지 내몰렸던 인류는 ‘메이저 래컴’이라는 위대한 장군덕택에 가까스로 승리한다. 그로부터 80년 후 버거와 세 번째로 치를 전쟁을 앞둔 인류에게는 또 다른 장군, 최고의 지휘관이 필요했다. 오늘날 국제연합(UN)의 평화유지군과 비슷한 형태의, 그러나 보다 강력한 권한과 군사력을 갖춘 IF(International Fleet)는 전 세계의 유일한 ‘셋째’ 앤드류 위긴스를 그 후보로 택한다. 미래의 지구는 두 명의 자녀만 허용하는 산아제한정책을 펼치고 있었기에 ‘셋째’는 특별함의 상징이면서 불행의 꼬리표였다.
‘엔더의 게임’은 내년 가을 개봉을 목표로 영화화 작업 중이다. 공식 블로그는 http://endersgameblog.tumblr.com/

앤드류 역시 그랬다. 최고의 지휘관으로 자라나 전쟁을 끝낼 ‘종결자(Ender)’의 운명을 타고난 아이, 그렇기에 가족과 친구를 잃고 철저히 고립된 삶에 갇혀야 했던 아이였다. 엔더만큼 뛰어났지만 훨씬 잔인했던 형 피터가 준 상처는 현실과 환상을 가리지 않고 그를 괴롭혔고, 남들과 현격하게 차이나는 그의 능력을 질투하는 전투학교 동료들은 엔더의 목숨까지 위협했다. ‘살람(평화)’을 기원하며 입 맞췄던 알라이, ‘친구’가 되고 싶다며 다가왔던 딩크를 지휘관학교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도 엔더는 혼자였다. 그는 지휘관이었지, 친구가 아니었다. 

예상대로 엔더는 최고의 지휘관에 등극한다. 전투기 80대로 1만 대에 가까운 적에 맞서 인류를 구원한다. 모두가 살아남았고, 또 다른 모두는 파괴되었다.

‘Page-turner(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책)’이라는 옮긴이의 표현대로 잠시도 눈을 떼기 힘든 이야기였다. 고작 여섯 살짜리 아이가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 10살이 된 해에 지구를 구하기까지 번뇌하고, 괴로움과 외로움에 허덕이는 과정은 그 어떤 성장소설보다 구체적이고 무거웠으며 철학적이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 자신이 어린아이처럼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아이들의 감정과 그들이 내린 결정은 어른들의 것만큼 현실적이며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 올슨 스콧 카드의 작품이었기 때문일지도.

그러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어린아이’보다 ‘하나의 주체적 인간’인 엔더가 고민하고 행동하고 아파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결국 이 전쟁은 서로 대화를 하지 못해 일어난 것이로군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면, 그가 널 해치지 않을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겠지.”

“그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엔더야, 우리가 먼저 그들을 침공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침공했지. 우리를 그냥 놔두려고 했다면 이미 100년 전에 그랬어야지. 1차 침공 전에.”

“그들이 우리가 지능을 가졌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도…”

“엔더야, 나를 믿어라. 그 주제에 대해서는 지난 100년간 수많은 토론이 있어 왔다. 아무도 답을 못했지. 하지만 결론은 명확하다. 만일 누군가 죽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최후까지 살아남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종으로서의 인류는 절대로 종의 존속을 포기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버거들을 말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들은 우리를 말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서로 말할 수 없었기에 버거도, 인류도 상대방을 믿지 못했다. 서로를 설명하지 못했기에 상대방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길 수 없었다. 남은 선택지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그들을 철저히 파괴하는 길뿐이었다. 시작은 단순했고, 끝은 처참했다.

사실 대부분의 전쟁이 그러하다. 복잡한 국제정세, 한 인간의 권력욕, 사상의 차이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얽혀 갈등을 일으키겠지만, 결국 전쟁은 단 한 발의 총성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삶이 무너진다. 그 처참한 결과를 알면서도 누군가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한다. 무기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정말, 진짜 다른 길은 없는 걸까? 훗날 ‘죽은 이들의 대변인(Speaker for the Dead)가 된 엔더가 쓴 버거들의 여왕 이야기를 읽으며 머릿속에 가득했던 질문이었다.

만약 당신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기에 오직 이것만을 부탁하고 싶어요. 우리를 적으로 기억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를 비극적 운명을 맞은 형제자매로 기억해주세요. 운명, 신, 또는 진화에 의해 다른 형태로 변해버린 형제자매로 기억해주세요. 우리가 서로 입맞춤했다면 우리는 서로를 죽이는 대신 서로가 같은 종족으로 느껴지는 기적을 맛보았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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