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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사람

2017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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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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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월요일, 남편과 동네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작은 해물탕집인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돈까스를 팔고, 그 돈까스가 맛있다. 또 생선구이를 시키면 노릇노릇하게 구운 큼지막한 삼치 한 토막을 뜨끈한 돌솥밥과 주는 곳이라 종종 즐겨 찾는다. 이날은 은우 어린이집 하원시킬 시간이 가까워져 돈까스에 생선구이를 서둘러 먹고 구수하게 눌러 붙은 숭늉마저 후루룩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마친 뒤 신용카드를 건네받을 때 사장님이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다.

“큰애는 어디 갔어요?”

순간 놀랐다. ‘이 분이 우리를 기억하는구나…’ 몇 년째 드나드는 곳이지만 사실 서로 알은 체를 한 적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맛있는 동네밥집이었고, 사장님 부부에게는 이따금 아이를 데리고 찾아오는 젊은 부부 정도였을 텐데. 언젠가 여사장님이 집 근처 골목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모습을 봤을 때도 혼자 ‘이쪽 사시나보다’ 생각하며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손님과 가게 주인’이 우리 관계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 날 은우를 찾는 한 마디에 기분이 묘했다.

며칠 뒤에는 아이를 데리고 새로 생긴 미용실에 갔다. 지나가며 구경만 하다 처음 방문한 곳이었는데 사장님이 대뜸 “은우야~~” 하며 아이를 반겼다. 알고 보니 어린이집 같은 반 쌍둥이들 엄마였다. 한 명이 은우와 이름이 같은데, 자신의 아이가 은우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그날은 예약 손님이 있어서 일요일에 미리 전화를 한 뒤 재방문했다. ‘그집 아이는 무슨 한자를 써요? 말은 어때요?’ 등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또 한 번 기분이 묘했다.

친구네 미용실에서 뽀로로에 집중하고 있는 이은우 어린이.

우리의 신혼 첫 집을 상도동에 구한 계기는 ‘편리함’이 전부였다. 4년 전 남편은 서초, 반포 쪽에서 일을 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밤늦게 들어오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근무시간이 고무줄 같고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활동무대가 달라지는 나에게도 교통이 적당히 편한 동네가 좋았다. 거기에 우리 형편까지 고려하니 상도동이 적당했다.

살아보니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이곳에 쭉 살아도 좋겠다 싶었다. 이곳은 토박이가 많은 동네였다. 서울 25개구 중에 녹지 비율이 높은 편이라는 통계도 사실이었다. 매일 비탈길을 오르느라 헉헉대고 여름이면 온갖 벌레들이 집안으로 들어온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창문을 열면 콘크리트벽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어디선가 새들이 날아와 울어대는 풍경을 보며 휴일의 오후를 보내는 것은 제법 아름다운 일이었다.

처음 우리가 살던 빌라는 30년이 넘고, 담벼락 하나를 두고 문화재와 붙어있어 고즈넉한 멋도 있었다. 세대수가 많지 않은데다 몇몇 이웃은 또래 아이들을 키우느라 돈독해보였다. 한때 그 관계 속에 초대받을 기회를 얻었으나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는 없고, 둘 다 일하느라 바쁜 신혼부부는 의지와 상관없이 하숙생처럼 동네에 머물 뿐이었다. 큰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물탕집 사장님과 ‘은우 엄마’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나서야 꽃이 됐다는 어느 시처럼, 그들이 내게 말을 걸자 나는 동네사람이 됐다. 참 사소한 일인데, 사소하지 않게 느껴졌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에 바람처럼 머무는 줄 알았는데 우리도 모르게 얕게나마 뿌리를 내리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랄까. 어쩌면 좀 더 단단하고 깊게 뻗어나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랄까. ‘묘한 기분’의 정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의 기대감은, 그것으로 끝날 예정이다. 지난달 우리는 서울 밖의 삶을 택했다. 주변 도움 없이 두 아이를 키울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아등바등하며 서울 안의 삶을 버텨낼 수도 있겠지만, 여러 변수들을 고려할 때 좋은 결정일까 싶었다.

물론 평택 친정 근처로 이사 가기 때문에 출퇴근 등 다른 새로운 고민들도 튀어나오고 있다. 새벽에 집을 나서 밤하늘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우리를 또 다른 하숙생으로 만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면, 아주 가끔은 그리울 것 같다. 나를 ‘동네 사람’으로 만들어줬던 순간이, 볕이 좋고 수줍게 익어가는 감이 창문 너머에서 손짓하던 날들이.

거실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이웃집 감나무, 4년 넘게 살며 딱 한 번 올라갔던 국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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